등록 : 2015.12.16 19:00
수정 : 2015.12.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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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냉장고를 부탁해>(拜托了箱) 포스터. 안현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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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외국에서 사는 건 쉽지 않다. 중국 베이징에서 외자법인으로 한식당을 여는 건 더 어렵다. 내자법인으로 설립해도 되는 일을 외자법인으로 연 이유는 조리사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외자법인일 경우 ‘워킹 비자’를 받기가 더 쉽다. 처음 3년 동안은 운영이 너무 어려웠다. 잠시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아마도 다른 한식당처럼 고기를 굽고, 인공 조미료를 많이 사용했으면 문을 닫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식당을 연 이유는 한식이 불고기, 비빔밥, 고기구이만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더 다양한 한국 음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지만 한식의 다양함을 보여주려 했던 나의 신념을 포기하면서까지 식당을 운영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나의 의지가 보답을 받기도 했다. ‘한식재단’에서 최근 국외 한식당 정보를 담은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 책 작업에 참여한 중국의 유명한 한 음식평론가가 내 식당에 대해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베이징에는 수많은 한식당이 있는데 메뉴가 천편일률적이다. 식당마다 무슨 특색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내 식당에 대해서는 “메뉴가 다양하고 특색이 있다”고 해 매우 기뻤다. 이런 이유로 중국 고급 잡지 등에서 상을 받은 것 같다. 이런 작은 성공은 문을 잠시 닫았던, 고민이 많았던 그 시절이 안겨준 것이다. 당시 나는 베이징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베이징에서 줄 서는 식당들을 다니면서 해답을 구했다.
다행히 지금은 수억원의 빚을 갚으며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베이징의 외식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보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예전에는 외식 브랜드를 만들면 10년 이상은 큰 문제 없이 영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규모가 큰 중국 한식 브랜드인 ‘한라산’과 ‘권금성’은 폐점 위기에 몰렸다. 권금성은 이미 다른 회사에 매각됐다. 외식업 소비층이 변했기 때문이다. 세대교체가 된 것이다. 상하이나 홍콩과 비슷한 상황이다. 사실 중국은 너무 커서 전역의 흐름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 지역별 차이가 크다. 중국 전역의 외식시장 특징을 다 안다고 말하는 이는 십중팔구 사기꾼이다. 베이징 말고는 흐름을 잘 모르는 나는 요즘 상하이에 자주 간다. 3년쯤 뒤 상하이에 한식당을 열 계획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변화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그 속도가 빨라 쫓아가기가 버거운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쿡방’ 바람도 불고 있다. 제이티비시(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4~5개 방송사에서 방영중이다. 그중 온라인으로 내보내는 <바이투어러 빙상>은 중국 게임업체 텐센트가 제이티비시로부터 정식으로 포맷 판권을 사서 만든 것이다. 텐센트는 세계 게임시장 매출 1위 회사다. 현재 나도 그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미카엘 같은 존재인 셈이다. 지금까지 2회 방송했는데 한 회당 80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베이징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보고 듣고 몸소 체험한 것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 연재는 그런 희망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연재를 통해 배운 점이 많아 감사한 마음뿐이다. 앞으로는 ‘맛’으로 독자들을 더 만나고 싶다. <끝>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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