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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르토. 사진 김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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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개 한 마리가 숨을 거두었다. 십년 전쯤 자취방 근처에 버려져 있던 푸들을 주워서 잠복고환수술을 시켜주고 올리베르토(사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버지가 앓을 때 올리도 고령 때문에 백내장과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 집 형편을 잘 아는 수의사는 병원에 일일이 오지 않도록 아예 싼값에 주사기와 인슐린을 팔았다. 아버지가 급성간암으로 입원하신 뒤 그건 내 몫이었다. 반쯤은 긴장으로, 반쯤은 금주의 영향으로 손을 덜덜 떨면서 인슐린병에 주사기를 꽂아 넣다 보면 내 꼴이 브루클린 어딘가의 마약중독자 같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개에게 인슐린을 주사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렸다. 그것은 하루하루 망치로 모루를 때리듯 엄중하게 다가왔고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서서히 숨을 거두었지만 아버지가 예뻐하던 올리는 비명을 여러 번 지르더니 숨이 멎었다. 불과 몇 주 되지도 않은 사이 흘려야 할 눈물이 너무 많았다. 법대로 한다면 개의 사체는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지만, 십년 넘게 함께한 생명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이었다면 그렇게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반려견을 화장하려면 50만원이 필요했다.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약값을 대느라 내겐 5만원도 없었다. 여러모로 정신이 나갔던 봄이었다. 나는 개를 가방에 넣어 어깨에 메고 아버지가 생전에 눈 치울 때 쓰던 삽을 꺼내 하염없이 걸어갔다. 가족을 불법 매립하기 위해서. 아버지도 눈을 감지 못했는데 올리도 불투명한 갈색 눈을 반짝 뜬 채였다. 가까운 한강다리 근처까지 걸어가는데 뻣뻣해진 개는 어찌나 무겁고 햇살은 따갑던지, 적당히 야트막한 언덕을 찾아 개를 한켠에 내려놓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도 남자들이 군대에서 땅 판 이야기를 많이들 하길래 삽질은 누구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 시간을 넘게 파도 손에는 물집만 잡히고 내가 원하는 구덩이는 생겨나질 않았다. 그제야 눈삽과 야전삽의 차이를 이해했다. 손잡이가 있어서 발로 팍, 팍 차서 날카로운 삽날로 흙을 파내야 하는데 막대만 달랑 달린 눈삽으로 무슨 땅을 판단 말인가. 비가 오면 올리가 허옇게 드러나게 할 순 없으니 있는 있는 힘을 다해 땅을 파헤치고 나무뿌리도 뽑았다. 얼굴과 손이 흙투성이 거지꼴이었지만 그런 데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두 시간도 넘게 걸려 겨우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팠다. 입었던 점퍼를 벗어 올리에게 둘둘 두르고 그 안에 눕혔다. 이놈의 눈삽, 나는 훌륭한 야전삽으로 다시 어떤 개를 묻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다행히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판 구덩이에 누운 올리는 평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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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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