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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04 20:44 수정 : 2015.03.13 14:19

올리베르토. 사진 김현진 제공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개 한 마리가 숨을 거두었다. 십년 전쯤 자취방 근처에 버려져 있던 푸들을 주워서 잠복고환수술을 시켜주고 올리베르토(사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버지가 앓을 때 올리도 고령 때문에 백내장과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 집 형편을 잘 아는 수의사는 병원에 일일이 오지 않도록 아예 싼값에 주사기와 인슐린을 팔았다. 아버지가 급성간암으로 입원하신 뒤 그건 내 몫이었다. 반쯤은 긴장으로, 반쯤은 금주의 영향으로 손을 덜덜 떨면서 인슐린병에 주사기를 꽂아 넣다 보면 내 꼴이 브루클린 어딘가의 마약중독자 같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개에게 인슐린을 주사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렸다. 그것은 하루하루 망치로 모루를 때리듯 엄중하게 다가왔고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서서히 숨을 거두었지만 아버지가 예뻐하던 올리는 비명을 여러 번 지르더니 숨이 멎었다. 불과 몇 주 되지도 않은 사이 흘려야 할 눈물이 너무 많았다. 법대로 한다면 개의 사체는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지만, 십년 넘게 함께한 생명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이었다면 그렇게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반려견을 화장하려면 50만원이 필요했다.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약값을 대느라 내겐 5만원도 없었다. 여러모로 정신이 나갔던 봄이었다.

나는 개를 가방에 넣어 어깨에 메고 아버지가 생전에 눈 치울 때 쓰던 삽을 꺼내 하염없이 걸어갔다. 가족을 불법 매립하기 위해서. 아버지도 눈을 감지 못했는데 올리도 불투명한 갈색 눈을 반짝 뜬 채였다. 가까운 한강다리 근처까지 걸어가는데 뻣뻣해진 개는 어찌나 무겁고 햇살은 따갑던지, 적당히 야트막한 언덕을 찾아 개를 한켠에 내려놓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도 남자들이 군대에서 땅 판 이야기를 많이들 하길래 삽질은 누구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 시간을 넘게 파도 손에는 물집만 잡히고 내가 원하는 구덩이는 생겨나질 않았다. 그제야 눈삽과 야전삽의 차이를 이해했다. 손잡이가 있어서 발로 팍, 팍 차서 날카로운 삽날로 흙을 파내야 하는데 막대만 달랑 달린 눈삽으로 무슨 땅을 판단 말인가. 비가 오면 올리가 허옇게 드러나게 할 순 없으니 있는 있는 힘을 다해 땅을 파헤치고 나무뿌리도 뽑았다. 얼굴과 손이 흙투성이 거지꼴이었지만 그런 데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두 시간도 넘게 걸려 겨우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팠다. 입었던 점퍼를 벗어 올리에게 둘둘 두르고 그 안에 눕혔다. 이놈의 눈삽, 나는 훌륭한 야전삽으로 다시 어떤 개를 묻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다행히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판 구덩이에 누운 올리는 평온해 보였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아뿔싸! 너무 혼신의 힘을 다해 파다 보니 주머니에서 그 전날 리퍼 받은 아이폰이 개와 같이 묻히고 말았다. 아이폰을 꺼내겠다고 죽은 개가 누운 자리를 파헤칠 힘도 배짱도 없었다. 수입은 하나도 없으면서 생전에 아이폰, 아이패드가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 아이폰 여기 있어요. 올리가 가져다드릴 거예요. 아버지, 카톡 할게요…. 그래서 개는 새 아이폰과 함께 묻혔다. 폰이야 아까웠지만 카톡이 내세로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기묘한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저문 강에 삽을 씻는 것이 아니라 저문 강에 삽을 버렸다. 녹초가 되어 흙 묻은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나는 생각했다. 내 다시는 군대에서 삽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비웃지 않으리라. 한 삽 한 삽 뜬 이야기를 지극히 존중하며 들으리라, 삽질이 이렇게 힘든지 그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이후 나는 실제로 삽질 이야기를 조용히 듣게 되었다. 그들은 말없이 듣는 내가 성격이 좋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저 ‘삽질’이라는 말만 나오면 아직도 어깨의 통증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해서, 내가 묻은 뻣뻣한 작은 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 울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무는 것뿐이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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