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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5 20:24 수정 : 2015.03.26 11:55

사진 김현진 제공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서울내기 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개도 지역별로 성격이 다를까? 서울에 살았으니 서울 개밖에 안 키워 본 나는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 작년에 충남으로 이사 온 뒤 유기견(사진)을 한 마리 주웠다. 천안 나들목 진입로에서 헤매고 있던 웬 조그만 수놈 몰티즈였는데, 중앙선 한복판에서 달달 떨고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멍하니 가던 중 깜짝 놀랐다. 언제 피떡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곳에 솜뭉치만한 개가 있어서 얼른 자전거를 멈추고 개를 부르자, 동그란 눈을 뜨고 다행히 이쪽으로 뛰어왔다. 택시를 불러 자전거와 개를 싣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한바탕 혼난 다음, 천안 동물병원이란 병원은 다 뒤지고 유기견 센터까지 알아보고 인터넷에까지 방을 붙였지만 개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아서 엉거주춤 우리 집에 눌러앉고 말았다.

성격도 아주 얌전하고 배변 훈련도 잘되어 있어 사람이 쓰는 화장실에 단정하게 용변을 보는데, 이 녀석이 재미있는 것이 응가를 하려고 폼을 잡고 있을 때 빤히 쳐다보면 어쩔 줄을 모르고 분주해하다가 그냥 참고 나중에 싼다. 그게 웃겨서 쉬하러 갈 때 따라가서 빤히 보면 어쩔 줄을 모르고 제자리에서 맴맴 돈다. 조치원 출신의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배를 잡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개, 완전 충청도 개야.” 충청도 개가 뭐냐고 물었지만 친구는 낄깔 웃으며 보다 보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대구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란 나는 도무지 충청도 정서를 몰랐지만 친구 말로는 하여튼 그런 게 충청도다운 거란다.

대강 ‘둥이’라고 부르던 것이 이름으로 굳어져버린 둥이는 내가 지금까지 키워 본 개 중 가장 얌전하다. 성대수술을 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해서 소시지를 주려다 안 주고 약을 올려 보니 “왕!” 하고 짖기에 수술은 안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형으로 착각할 만큼 얌전하게 소리도 안 내고 차분하면서도 분주한 이 개를 왜 버렸을까, 아니면 집을 나왔을까 궁금해하는데 역시나 하자가 있었다.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할 고환이 뱃속에 있는 잠복고환이었다. 유기견에게는 치료비를 할인해 주는 고마운 의사 선생님을 만나 수술을 하고 집에 데려오자 전신마취가 점점 깨면서 졸린 눈을 깜빡이던 둥이는 힘겹게 힘겹게 한 발짝씩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는 쟤가 저렇게 엄청난 의지로 어디를 가나 싶어 보고 있었는데 한 발짝씩 온 힘을 다하여 화장실 쪽으로 향해 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혼신의 힘을 다해 화장실 문턱을 넘더니 소변을 보고는 문지방을 다시 나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우리는 심하게 감탄했다. 그동안 우리가 키웠던 개들은 마취가 덜 풀렸을 때 그 자리에 똥이고 오줌이고 지리는 게 당연했는데, 저토록 자긍심이 강한 개가 있을 수가.

낮에는 이렇게 인형처럼 조용하지만 이 녀석의 유일한 단점은 잘 때 엄청나게 시끄럽다는 것이다. 코를 고는 것은 물론이고 액션영화 같은 꿈을 꾸는지 “힉! 히익! 액!” 하는 소리를 내면서 앞발을 번쩍번쩍 쳐들어 안 그래도 불면증을 앓고 있는 내 턱에 어퍼컷을 날리기 십상이다. 그뿐 아니라 유난히 잠꼬대가 심한 날이면 오줌을 지리곤 하는데, 오줌을 싸면 자기가 더 놀라서 깜짝 놀라 일어나서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보나 마나 내가 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놈의 의심이 느껴진다. 나는 “야, 네가 싼 거야! 네가 싼 거라고!” 하고 소리치지만 개의 표정은 별로 믿는 것 같지 않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간도 생기다 말았는지 산책하다가 손바닥만한 치와와가 이쪽으로 와도 덜덜 떨면서 달아나 버리는데, 간혹 가만히 있다가 냄새 없는 헛방귀를 “포옥~” 하고 뀔 때가 있다. 그러면 제가 방귀를 뀌고는 제 방귀 소리에 깜짝 놀라 제자리를 뱅그르르 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본다. “인마, 너라고!” 이 녀석이 하는 웃기는 짓을 볼 때마다 충청도 개가 과연 어떤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하는데, 뭐랄까 속을 알 수 없는 것? 표심을 도통 알 수 없는 것? 하여튼 내가 처음 겪어 보는 충청도 개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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