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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06 20:24 수정 : 2015.05.07 10:29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이제 나의 1세대 개들이 모두 죽었다. 나의 1세대 개라고 하는 것은, 아주 본격적으로 개를 줍기 시작하던 십년 전쯤을 말한다. 그때는 앞다리가 절단되었다거나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거나 깊은 부상이 있는 개들이 많았다. 나이로 치자면 2000년대 초반 태생들이니까, 지금은 다른 곳에 입양 간 녀석들도 많이들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사실 유기견은 나이를 알 수 없다. 의사가 대강 치아 등을 보고 얘는 몇살쯤 됐겠다, 하면 그게 녀석의 나이가 되는 것이다. 제일 귀여울 강아지 때를 실컷 즐겼다가 미워지는 성견이 되면 내다버리니까, 대체로 서너살 된 연령이 유기견 중 가장 많았다. 지금처럼 유기견을 입양하자거나 하는 캠페인이 없어서 사람들이 개를 툭하면 버리던 시절이었다.

루이 필립. 사진 김현진 제공
내가 1세대 개들 중 소식을 알고 있는 것은 루이 필립(사진)이 마지막이다. 루이 필립이라니, 이 거창한 개 이름은 아마 그때 읽던 프랑스 역사책에서 대강 붙인 이름이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개니까 대체로 버려진다. 아니면 돈 드는 병이 있거나. 루이 필립은 전자였다. 동물보호소에서는 넘치는 유기동물들 때문에 보호 후 한달이 지나면 안락사되는데, 루이 필립은 안락사 직전에 내가 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어온 개였다. 요즘은 2주 만에 안락사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다. 어쨌든 목숨을 겨우 건진 그는 체구가 작은 몰티즈 견종이었는데, 희한하게도 3등신이었다. 수컷인데도 어딘가 동네 아줌마처럼 쾌활해서 다른 멍멍이 멤버들과도 허물없이 잘 지냈다. 어떤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에게 베풀 사랑으로 이웃을 도우라고 말하지만, 그런 사람이 자기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는 일을 별로 못 보았다는 것은 좀 계면쩍은 일이다. 어쨌거나 다행히 루이 필립은 친구의 오빠 집으로 입양됐다.

그의 서글서글한 성격은 새로운 집에 가서 빛을 발했다. 루이 필립의 딱한 점은 성대 수술이 되어 있다는 거였다. 신기하게도 몇년 후 열심히 짖는 연습을 한 루이 필립은 작게나마 결국 짖게 되었다. 루이가 멍멍 소리를 내려고 지독히도 애쓰던 모습이 늘 딱했던 나는 무척 기뻤다. 그리고 그는 평화의 대사처럼, 어린아이를 때리는 시늉이라도 하면 소리가 잘 나지 않는 목청으로 무섭게 짖으며 달려들었다고 한다. 가벼운 언쟁도 참지 못하고 분주하게 중재하고 다녔다는 녀석은, 텔레비전에서도 서로 총질을 하거나 싸우는 장면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의 오빠는 액션영화가 보고 싶어도 루이 필립이 질색하는 바람에 결국 휴먼다큐 같은 것만 봐야 하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믿지 않지만, 오빠의 주장으로는 텔레비전에 폭력적인 장면이 나올 때면 루이 필립이 늘 리모컨을 앞발로 눌러 채널을 바꾸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조카들이 놀러 오면 지치지 않고 놀이 상대 겸 보호자 노릇을 했다는 루이 필립은 자다가 숨을 거두었다. 나름 호상이었다고 생각해서 나는 울지 않았다. 녀석에게 프랑스 왕족의 이름을 붙여준 건 어울리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3등신의 웃기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몰티즈는 누구보다 고귀한 성정을 보여준 개였으니까.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조그마한 몸에, 그토록 고귀한 정신이 들어 있었으리라고 우리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루이가 죽었다고 알리며 친구가 어깨에 기대 울었을 때, 나는 울지 않고 친구의 어깨를 안고 말했다. 만일 우리가 언젠가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루이가 마중을 나올 거야.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 개라면 그런 개니까. 구름처럼 복슬복슬하고 흰 털을 하고 있으니까, 찾으려면 한참을 둘러봐야 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짖을 수 있으니까, 분명히 루이는 짖으면서 달려올 거야. 프랑스 왕족 같은 자태를 하고 말이지.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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