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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개. 사진 김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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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거의 개 이야기만 쓰는데, 동물은 금붕어(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한다) 빼고 다 좋아하지만, 특별히 개를 좋아하는 유전자가 디엔에이(DNA)에 각인돼 있다거나 하진 않다. 시골 출신의 아버지는 생전에 개를 음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고, 어머니는 개를 좋아하되 귀여워하기보다 살짝 놀려주는 걸 어려서부터 좋아한 장난꾸러기였다. 나로 말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생긴 개든, 냄새가 나든 말든 일단 개만 봤다 하면 껴안고 뒹구는 걸 좋아했다. 서울 상수동 당인리발전소 인근 고물상에서 키우는 꽃순이라는 열살 된, 아무리 좋게 말해도 성격이 좋다거나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얼룩개가 있는데, 1년에 한번 미용을 시킨다. 그게 꽃순이가 1년에 하루 몸에 물칠하는 날이다. 안 씻기로 어디 가서 꿀린 적 없는 나를 무릎 꿇린 주제에 성격은 여왕님이라 손, 하면 일단 한번은 주는데, 두번 시키면 그때부터 사납게 물기 시작한다. 손등이 찢어져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꽃순이가 하는 짓이 웃겨서 실실 웃으며 “꽃순아, 아이, 이쁘다. 이쁘다” 하며 성질을 받아주고 있었더니 참다못한 친구가 내 목덜미를 꽉 붙잡고 질질 끌며 소리쳤다. 물론 꽃순이가 아니라 나에게. “야! 이 미친×아! 저게 뭐가 예뻐?” 그래도 예쁘니 어쩌란 말인가. 흔히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충성에만 혹한 바보스러운 사람들로 그려지고, 고양이 애호가들은 마크 트웨인이나 존 레넌처럼 명민하고도 감성적이면서, 서로간의 거리를 잘 지킬 줄 아는 섬세한 사람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원한 ‘개파’일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건 내가 어떤 개에게 목숨을 빚져 아직까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개들도 다 성격이 있다. 이를테면 촐랑이, 먹보, 못된 녀석, 그리고 치유개다. 혈액형처럼 대강 네 종류로 나눈 개인적 분류다. 꽃순이 같은 경우는 조금 강도가 약한 ‘못된 녀석’이다. 먼저 촐랑이들은 꼬리를 하루 종일 흔들면서 발이 땅에 붙어 있을 틈 없이 촐랑대는 녀석들. 요 녀석들은 옆집 아줌마를 보면 아줌마 봐서 즐겁고 밥 주면 밥 줘서 즐겁고 낮잠 자면 낮잠 자서 즐겁고 산책 가면 산책 가서 즐겁다. 공 보면 공이라 즐겁고 빈 캔은 빈 캔이라 즐겁고 세상에 슬픈 일이 없는 녀석들이다. 먹보는 말 그대로 먹돌이 먹순이들이다. 촐랑이들도 먹는 걸 좋아하지만 먹을 것과 주인과 빈 캔 모두에 균등하게 촐랑거린다. 장난감이나 주인을 보면 기뻐하긴 하지만 일단 캔이나 먹는 것에 최우선으로 목숨을 건다면 그 녀석은 먹보다. 성골 먹보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관심 없다가 먹는 것만 보면 눈을 번쩍 뜬다. 키우면서 제일 허망한 종류도 이 녀석들인데 사실 그건 먹보들의 잘못이 아니라 먹을 걸 줄 때마다 환장하는 그 모습에서 동족혐오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 못된 녀석들은 그냥 못된 녀석들이다. 80년대~9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요크셔테리어 같은 품종이 원래는 못된 녀석들이 아닌데 그놈의 인기 때문에 숱한 근친교배로 성격을 버려서 못된 녀석 취급을 받아버렸다. 못된 녀석들은 간식을 줘도 으르릉거리고 무는 것은 기본이다. 모든 사람을 싫어하고 다른 개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들에게 당연히 못되게 굴어 개 공포증을 유발시키는 못된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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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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