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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4 19:29 수정 : 2015.06.25 14:50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벌써 4년 전 이야기다. 그때 우리가 “쥐, 쥐” 하고 부르던 쥐는 아니고 진짜 쥐가 죽었다. 주인 잃은 집이 점점 을씨년스러워진다 하더니 급기야 쥐가 나왔다. 같이 살고 있던 나이 든 푸들이 쥐를 발견했다. “찍찍” 소리에 징그럽고 무섭고 이런 것보다 일단 깜짝 놀라 꼬리를 잡아채 보니 작은 쥐였고, 나에게 낚아채일 정도니 건강하지도 않은 쥐였다. 처음에는 죽었나 보다 싶어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변기에 넣고 내릴 셈으로 퐁당 빠뜨렸는데, 아뿔싸, 쥐는 맹렬하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얼른 다시 건져냈다. 쥐의 몸통에 조그만 벌레들이 바글바글했다. 이게 쥐벼룩인가 보다 싶어 갑자기 가엾어져 벌레를 잡아주려 했지만, 하나하나 잡다 보니 끝이 없었다. 일단 세면대에서 쥐를 씻겼다. 좀 전에 찐 작은 고구마를 하나 주었더니 그 고구마보다도 작은 쥐는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앞발로 고구마를 끌어안았다. 춥지 말라고 이불 삼아 쥐를 두루마리 휴지로 둘둘 말고 신문지를 꼼꼼하게 깐 종이 상자에 눕혔다. 일단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쥐를 두었다. 키울 생각이야 없었지만 길에 버릴 수도, 변기에 내릴 수도 없어서 일단 상자에 잘 두었는데, 한나절 지나고 보니 쥐는 뻣뻣하게 죽어 있었다.

그해 바로 전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직 오십대였다. 헬스장 같은 곳에서 신체 나이를 재면 삼십대로 나올 만큼 건강하던 분이 갑자기 암이 발전해서 치료도 제대로 해보기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배우자 없는 딸 하나밖에 없었으니 남들 보기에는 초라한 장례식장이었을 테지만, 나는 너무 울지 않아서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가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울고 싶어도 울 틈이 없었다. 아버지가 임종 판정을 받자마자 장례식장은 어디로 할 거냐, 화장이냐 매장이냐, 장례식장에서 쓰는 장식은 뭐뭐 할 거냐, 관은 얼마짜리 있는데 뭘로 할 거냐, 온갖 처리해야 할 잡스러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슬퍼할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불꽃 네고’의 향연이었다. 살면서 뭔가를 그렇게 깎아본 적이 있을까. “안 사요, 안 해요”를 연발했다. 꽃도 필요 없다, 양초도 필요 없다, 상복도 안 입겠다, 온갖 장식 다 필요 없다, 돈을 줄이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 급기야 녹즙 배달할 때 쓰는 스쿠터를 타고 집에 가서 아버지 생전에 입으시던 양복을 꺼내 왔다. 장례지도사가 한숨을 쉬더니 “목사님이시니까” 하면서 충고해준 거였다. 병원에서 성산대교를 넘어 집에 갔다 오는 동안 몇 번이나 한강에 들이박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울기에는 너무 분주했다. 발인이 끝나자마자 도로 하고 있던 녹즙 배달을 재개했고, 불평하는 손님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두번 돌아가시진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며 못 끊게 했고, 그래도 몇 명은 끊었으며, 어머니는 자매들이 있는 대구로 가서 지냈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던 개 한마리를 묻었고, 빈집에는 나와 늙은 개만 있었다. 그러다가 쥐가 나타난 거였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그때 눈을 감고 빳빳해져 있는 조그만 쥐를 보니 어찌나 가엾던지, 앞으로 이명박을 쥐라고 부르는 것도 삼가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문 닫을 일만 남은 교회 화단을 팠다. 워낙 작은 쥐는 죽으니까 더 작아져서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파도 이 하찮은 죽음에는 충분했다. 조그마한 구덩이에 쥐를 눕혔다. 저승 가서 배고프지 말라고 아까 눈도 못 뜨면서 쥐가 바둥대며 껴안고 있던 고구마도 같이 묻었다. 혹시 동네 길고양이가 파내갈까봐 위에 묵직한 돌을 얹고 나서 쥐가 누워 있던 그 상자를 버리다 말고 갑자기 주저앉아 한참 울었다. 아버지 죽었을 땐 안 울던 년이 쥐가 죽었다고 울다니 별일이었다. 그렇지만 다 가엾어서. 평생 목회만 하다가 갑자기 죽은 사람도 불쌍하고, 그런 사람하고 결혼해서 평생 초라하게 산 엄마도 불쌍하고, 이럴 때 기댈 형제자매 하나 없는 나도 갑자기 서럽고, 뭐 찾아먹을 게 있다고 이런 집구석까지 기어들어왔다가 죽은 쥐도 불쌍하고, 온 세상이 다 가엾은 일 천지였다. 죽으면 빳빳해진다. 사람도 그렇고 쥐도 그랬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 쥐가 왔다 가서, 비로소 울었다. 너 아니면 울지도 못할 뻔했다. 안녕, 쥐. 그 후로도 매년 연약한 것들은 모두 봄에 떠나갔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장사를 더 지내야 멈출 수 있을까. 사랑하는 것을, 슬퍼하는 것을….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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