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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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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벌써 4년 전 이야기다. 그때 우리가 “쥐, 쥐” 하고 부르던 쥐는 아니고 진짜 쥐가 죽었다. 주인 잃은 집이 점점 을씨년스러워진다 하더니 급기야 쥐가 나왔다. 같이 살고 있던 나이 든 푸들이 쥐를 발견했다. “찍찍” 소리에 징그럽고 무섭고 이런 것보다 일단 깜짝 놀라 꼬리를 잡아채 보니 작은 쥐였고, 나에게 낚아채일 정도니 건강하지도 않은 쥐였다. 처음에는 죽었나 보다 싶어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변기에 넣고 내릴 셈으로 퐁당 빠뜨렸는데, 아뿔싸, 쥐는 맹렬하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얼른 다시 건져냈다. 쥐의 몸통에 조그만 벌레들이 바글바글했다. 이게 쥐벼룩인가 보다 싶어 갑자기 가엾어져 벌레를 잡아주려 했지만, 하나하나 잡다 보니 끝이 없었다. 일단 세면대에서 쥐를 씻겼다. 좀 전에 찐 작은 고구마를 하나 주었더니 그 고구마보다도 작은 쥐는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앞발로 고구마를 끌어안았다. 춥지 말라고 이불 삼아 쥐를 두루마리 휴지로 둘둘 말고 신문지를 꼼꼼하게 깐 종이 상자에 눕혔다. 일단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쥐를 두었다. 키울 생각이야 없었지만 길에 버릴 수도, 변기에 내릴 수도 없어서 일단 상자에 잘 두었는데, 한나절 지나고 보니 쥐는 뻣뻣하게 죽어 있었다. 그해 바로 전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직 오십대였다. 헬스장 같은 곳에서 신체 나이를 재면 삼십대로 나올 만큼 건강하던 분이 갑자기 암이 발전해서 치료도 제대로 해보기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배우자 없는 딸 하나밖에 없었으니 남들 보기에는 초라한 장례식장이었을 테지만, 나는 너무 울지 않아서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가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울고 싶어도 울 틈이 없었다. 아버지가 임종 판정을 받자마자 장례식장은 어디로 할 거냐, 화장이냐 매장이냐, 장례식장에서 쓰는 장식은 뭐뭐 할 거냐, 관은 얼마짜리 있는데 뭘로 할 거냐, 온갖 처리해야 할 잡스러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슬퍼할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불꽃 네고’의 향연이었다. 살면서 뭔가를 그렇게 깎아본 적이 있을까. “안 사요, 안 해요”를 연발했다. 꽃도 필요 없다, 양초도 필요 없다, 상복도 안 입겠다, 온갖 장식 다 필요 없다, 돈을 줄이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 급기야 녹즙 배달할 때 쓰는 스쿠터를 타고 집에 가서 아버지 생전에 입으시던 양복을 꺼내 왔다. 장례지도사가 한숨을 쉬더니 “목사님이시니까” 하면서 충고해준 거였다. 병원에서 성산대교를 넘어 집에 갔다 오는 동안 몇 번이나 한강에 들이박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울기에는 너무 분주했다. 발인이 끝나자마자 도로 하고 있던 녹즙 배달을 재개했고, 불평하는 손님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두번 돌아가시진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며 못 끊게 했고, 그래도 몇 명은 끊었으며, 어머니는 자매들이 있는 대구로 가서 지냈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던 개 한마리를 묻었고, 빈집에는 나와 늙은 개만 있었다. 그러다가 쥐가 나타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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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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