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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2 22:30 수정 : 2015.08.14 08:43

줄리아노 데 메디치. 사진 김현진 제공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내 인생을 치유해주고 지금은 내 곁에 없는 개에 대해 쓰려고 일주일을 아팠다. 모니터 앞에 앉아 깜빡대는 커서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다. 개가 내 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다. 그런데도 가슴속 상처는, 방금 커다란 망치로 사정없이 짓뭉갠 것처럼 부서진 살과 뼈가 뒤엉켜 진물과 피가 끊임없이 흐른다. 지금도 뭉클뭉클 쏟아지는 선혈을 느낄 수 있다. 1000일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그를 잃은 상처가 낫지 않아, 개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집 바로 뒤 인적 없는 야산으로 미친년처럼 올라가던 중 가시나무에 다리를 다쳐 피를 흘리며 끄윽 끅 소리내어 울었다. 결국 귀에서 피고름이 쏟아져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피고름이 쏟아지는 개였다. 그까짓 개 한 마리, 라고 하지만, 몇십 마리 유기견을 돌보고 입양시켜 왔지만, 그 개는 나의 전부였다. 내 형제였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내가 처음 구조한 유기견이기도 했다. 읽고 있던 역사책 이름에서 딴, 이탈리아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 이름이었다. 누구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다리와 꼬리가 직각으로 굳어지도록 부러지고 방치되어 있던 그 검정 푸들은 은근하고 끈덕진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까지 개를 침대에 들이도록 허락해주지 않은 엄마를 말간 눈동자로 끙끙대며 올려다봐서 결국 케이오시킨 최초의 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목숨을 구한 개였다. 우울증이 역병처럼 창궐하던 십대 후반, 여기저기 돈 때문에 치이고 사람 때문에 치이고 도저히 죽을 용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부모님이 멀리 출타한 틈을 타 잘 드는 공업용 나이프로 손목을 끊고 수면유도제를 밥공기로 몇 공기쯤 삼켜서 원하던 대로 의식이 가물가물할 때, 자꾸만 귓가에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줄리아노 녀석이 끙끙대는 소리였다. 조용히 하렴, 나는 잘 거야. 덕진 성격대로 줄리아노는 계속 얼굴을 핥으며 끙끙대고 울었다. 그러면서 개가 초조하게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찰박찰박…. 찰박찰박? 이게 무슨 소리야?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보니 피웅덩이에서 개가 날뛰는 소리였다. 온통 피바다인 방바닥에서 개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며 나를 핥았다가 끙끙대다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피가 덜 번진 장판 위에도 온 방을 날뛰느라 덩어리진 피가 묻은 개 발자국이 흥건했다. 가물가물하는 의식 속에 개와 눈이 마주쳤다. 줄리아노는 끙끙대며 내 얼굴을 계속 핥았다. 개는 다리까지 피에 푹 젖어 있었다. 그때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겠다, 싶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수건으로 팔을 묶고 병원에 가서 위세척을 했다. 푸들 주제에 구조견 노릇을 하다니. 이후로 15년 동안, 광포한 젊음과 좋지 못한 내 인격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을 때 말간 그 개의 눈에 몇 번이나 구원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나는 늘 불안했다. 줄리아노가 죽으면 어쩌지. 난 아마 폐인이 될 거야.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하필이면, 내가 태어나서 제일 사랑한 남자가 아주 침착하게 네가 내 기분을 거슬렸으니까 난 네 개를 죽일 거야, 하고 개를 때려죽였다. 그 착한 개는 마지막 순간까지 꼬리를 흔들며 그 사람에게 갔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이후 나는 지난 2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나를 죽이지. 처음에는 그를 죽이고 나도 죽을 생각이었다. 더는 살고 싶지도 않았고, 죽이고 죽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기 전에 하필이면 귓가에 들려온 건, 주기도문이었다.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수천 수만 번을 들어 온 그 기도문. 그중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내가 남들에게 해온 잘못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인에게 상처 입힌 것들, 온갖 폭력과 그 죄들…. 나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주지 않으면, 내 죄 역시 사함을 얻지 못한단 말입니까? 나는 그 인간을 죽이고 죽을 자격조차 없습니까? 그랬다. 나는 그 자격조차 없는 인간이었다. 내가 타인에게 지은 죄들이 나를 가로막아서, 나는 결국 살인범이 되는 데 실패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줄리아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막았다. 이제야 그 개가 내가 살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알겠다. 그런데도 나는 네가 떠난 이후 3분의 2쯤은 죽어 있구나. 네가 내 곁을 떠난 지 벌써 몇 년인데도 슬픔은 선연해서 나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그래도 살아야겠지. 우리가 서로 바라는 걸 하나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없던 것처럼. 줄리아노야….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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