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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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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둥이(하얀색 몰티즈·추정나이 5살)는 작년에 데려왔으니 나와 가장 최근 인연을 맺은 유기견이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딩가딩가 페달을 밟다가 천안 어느 나들목에서 희고 작은 개가 동동거리며 차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걸 보고 기겁을 해서 집으로 달랑 안고 왔다. 하도 작고 귀엽고 얌전해서 분명히 누가 잃은 개일 것이다 여기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주인 찾는 글을 올린 것은 물론, 둥이가 발견된 인근에 위치한 동물병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 개 모르세요?” 하고 묻고 다녔지만 수사에 진척이 없어 둥이는 내 개가 되었다. 역대 가내 유기견 순번을 매기자면 20번까지는 안 되고 17번은 확실히 넘어갔을 것이다. 유기견을 데려왔다고 하면 내가 자선을 제공하고 있다는 식의, 그러니까 잠자리와 집 같은 은총을 ‘베풀고’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길개나 길고양이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일방적이지만은 않다. 적어도 둥이와 나는 그렇다. 전에도 이 지면에 끔찍하게 개를 잃은 사건에 대해 간결하게 썼지만(<한겨레> 8월13일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그 일은 내 육체와 영혼에 큰 상흔을 남겼다. 나는 아직까지 눈앞에서 일어난 그 처참한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거기에서 일어나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지만 나는 일종의 장애인이 된 느낌을 받는다. 말하자면, 영혼에 장애가 생겨서 휠체어나 목발을 사용하지 않고는 도저히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없는 느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처럼 이전에 자주 하던 활동들이 힘겹고, 녹즙 배달을 할 정도로 걸어서 싸돌아다니던 걸 좋아했으면서 집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바람에 10㎏ 이상 살이 쪄서 거울을 보면 이게 누구냐 싶다. 약에 의지하지 않고는 잠들 수가 없고, 의사로부터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꼬박꼬박 병원에 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병원비는 저렴한가. 물론 그것도 아니고. 그런 와중에 나에게 온 둥이는 희한하게도 내가 키워본 개들 중 가장 손이 가지 않는 개다. 똥오줌을 모두 사람 화장실 하수구에 살며시 가리고, 짖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성대수술을 의심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간식을 엄청 조르는 주제에 고기처럼 군침 도는 음식과 저 혼자만 있어도 사람이 주지 않는 한 입도 안 대고, 흔하게 개들이 하는 저지레를 하나도 하지 않아 혹시 몸에 유에스비 충전 단자라도 없나 의심도 했다. 이동용 가방에 넣어 버스나 지하철에 탈 때도 얌전하고, 하도 기척을 안 해서 스튜디오에서 팟캐스트 녹음을 하고 있을 때도 개가 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였다. 어떤 친구는 먼젓번 집에서 못되게 굴다가 혹시 쫓겨난 것 아니냐고, 그래서 반성한 다음 누가 데려가주면 얌전하고 착하게 굴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지 않았으면 개가 이럴 수가 없다고 농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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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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