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2.16 19:07
수정 : 2015.12.17 10:10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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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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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하는 개(사진)는 다소 특이한 생김새를 지녔다. 얼굴은 일단 미니핀을 떠올리시길. 그렇지만 작고 깜찍한 미니핀이 아니라 8㎏에 달할 만큼 건장한 녀석이다. 여느 사냥개에 뒤지지 않는 얼굴이지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그런대로 귀엽다. 하지만 녀석의 어깨부터는 마치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연상케 하는 근육투성이다. 인간 보디빌더의 승모근처럼 탄탄한 삼각형으로 발달한 어깨, 개의 몸치고는 기괴하게까지 보인다. 그것을 받치고 있는 두 앞다리 역시 우람하다. 제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이 상체에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이다. 우람한 윗등에서 5, 6번째 척추를 지나가는 순간 뜨겁던 개의 감촉은 얼음처럼 싸늘해진다. 이 개는 허리 아래부터 가려움도, 아픔도, 누가 쓰다듬는 손도, 오줌과 똥의 온도나 감촉도 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산탄총에 맞아 파편이 척추를 꿰뚫어 하반신이 모두 마비되어 버린 개였다.
한계까지 힘을 집중했다는 느낌을 주는 억센 상체로 씩씩하게 나아가면 아주 최소한의 근육 자락과 살 몇 점만 남은, 갓 태어난 새끼의 다리보다도 약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뒷다리 두 개가 휘청휘청 따라간다. 그 뒷다리는 군신 아폴론을 연상케 하는 당당한 상체에 함께 달려 있는 부위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다.
그런 무력한 하반신으로 저도 모르게 오줌이나 똥을 줄줄 흘리고 다니기라도 하면 비통하기까지 했다. 임시로라도 보호해줄 집이 없으면 곧 안락사를 당한다는 유기견 보호소의 이야기에 나는 죽어도 살겠다는 투지가 느껴지는 이 개의 불타는 눈빛에 압도되어, 또 아직 어린 탓에 그 매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이미 유기견을 두세 마리 돌보고 있었으면서도 이 무거운 ‘단오’를 대책 없이 끙끙대며 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스스로 대소변이 나오는지 알 수조차 없을 만큼 마비된 하반신을 지닌 개를 위해 아기용 기저귀를 사다가 수시로 소변을 배출해도 새지 않도록 단단히 여미는 기술이었다. 두번째로 배워야 할 것은 먹이를 준 후 척추에서 엉덩이 쪽을 눌러보며 대변의 위치를 찾는 거였다. 가녀린 기저귀에만 의지하다가는 자칫 바닥이 똥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척추를 따라 엉덩이를 훑어 내려가면서 결코 앞으로도 약동할 리 없는 대장 안에 있는 대변을 점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면 단단히 개를 붙잡고 그 부분을 주물러서 항문으로 그걸 짜냈다. 주운 유기견이 구질구질한 모습일수록 이탈리아 귀족의 거창한 이름을 붙이던 당시의 원칙에 따라 ‘로렌초 데 메디치’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간식을 나눠줄 때면 미식축구 선수 같은 어깨를 들이밀며 다른 개들을 밀어붙이곤 했다. 씩씩한 건 좋은데 유독 많이 짖는 바람에, 이웃집의 신고와 구청의 권고 등이 있어 내 애걸복걸에도 불구하고 결국 로렌초는 세 해에 걸친 ‘임시보호’ 끝에 보호소로 돌아갔다. 무력한 자신을 탓하며 이후 소식을 계속 엿본 결과 좋은 분에게 입양된 모양이라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임시보호처라도 갈급하다고 하여 데려온 것이긴 하지만 왜 끝까지 돌보지 못할 거였으면서 데려갔느냐, 라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그 녀석은 어떻게든 살 것 같았다고,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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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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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시무시한 어깨를 써서 죽어버린 하반신을 질질 끌며 간식이 든 싱크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녀석의 모습에서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도 적이 숨은 숲을 향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시즈탱크’(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탱크) 같은 터프함이 있었다. 살 것 같았다. 내가 언제나 가지고 싶었던 그런 터프함이 바로 그거였기에, 시집도 안 간 여자애가 개 기저귀를 갈면서 그걸 좀 옆에서 배워 갖고자 했는데 그다지 성과를 올리진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너, 살아서 다행이다. 살아서 고맙다. 하긴 때론 살아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최고의 터프함의 증거가 되곤 하니까, 나도 네게 아주 헛배운 게 아니기를.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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