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1.27 20:19 수정 : 2016.01.28 10:27

콜트·콜텍 노동조합 임재춘 조합원이 ‘둥둥이’를 안고 있다. 김현진 제공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최근 글을 쓰기 위해 새누리당사 앞에 자리한 콜트·콜텍 농성장을 자주 찾았다.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듯 이곳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투쟁 현장이다. 벌써 9년 전,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예고도 없이 정문을 걸어잠그고 별안간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 즉 ‘날라버린’ 이 회사는 “나는 이미 나이 30대에 대대손손 쓸 재산을 다 벌어놓았다”는 사장의 말처럼 이전하기 전에도 잘되는 회사였고 지금도 회계감사 결과가 우수한 우량 기업이다. 이제 50·60대가 된 직원들이 20~30년간 근무하면서 쌓은 기술 노하우가 이러한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에도 회사는 해고 통보 절차 같은 기본적인 근로기준법도 지키지 않고 이들을 내몰았다.

워낙 황당한 해고였으므로 길어야 1~2년 싸우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노조원들은 당장 살아야 하는 현실에 어쩔 수 없이 하나둘 이탈했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퇴각이었다. 지금은 단 네 사람이 남았다. 생활고로 쌓이는 부채, 가정의 불화와 해체…. 큰 희생을 치르면서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법원은 코미디 같은 선고를 내렸다.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경영 위기를 대비한 해고는 적법하다.” 전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잘나가는 회사가 혹시 겪을지도 모르는 경영 위기를 대한민국 법원은 이토록 섬세하게 배려한다. 저 논리가 상식이 된다면 부당해고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심지어 하루가 멀다 하고 무성하게 막말을 뿌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강경 노조 때문에 건실한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며 뜬금없이 콜트·콜텍 노동조합을 언급했다. 그의 보좌관들이 검색이라도 한 번 했으면 여전히 잘나가는 회사라는 걸 알았겠건만, 쇠파이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조합원들은 일터 뺏긴 것도 억울한데 회사를 망하게 한 불온 노조가 되었다. “파업 한 번 안 해본 노조가 어떻게 강성 노조야.” 13일간 항의단식을 하다 쓰러진 콜텍 이인근 지회장의 말이다. 그 전에는 예순 가까운 콜트 방종운 지회장이 45일간 단식 후 구급차에 실려 갔다. 김무성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새누리당사 앞에 비닐천막을 쳐놓고 100일 넘도록 노숙농성을 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아니, 노골적인 무시에 가까웠다. 너희는 떠들고 굶고 실려 가라, 난 눈 하나 깜짝 안 할 테니까.

취재를 위해 겨울바람이 숭숭 들이치는 이 천막을 오가면서, 나는 이제야 농성이라는 것이 ‘싸움’이 아니라 ‘견딤’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집회를 하든 선전전을 하든 돌아오는 건 그저 심상한 취급뿐,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 스티로폼 한 장 깔아놓은 천막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 연대하는 시민들이나 다른 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시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싸움의 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 그래서 진짜 싸움이란, 견디는 거였다. 특히 모두 집에서 보내는 주말에 천막은 참 쓸쓸했다.

시간 하나는 많으니 되도록 주말에 오자고 생각한 나는 나만큼이나 시간이 많은 훌륭한 연대 세력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우리집 개 ‘둥둥이’였다. 아무나 잘 따르고 결코 짖지 않는 순한 둥둥이는 희한하게도 아저씨들을 매우 좋아해서 콜트·콜텍의 연대견으로 적격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골고루 안기고 찾아오는 방문객을 살뜰히 반기는 둥둥이를 보고 방종운 지회장님은 살짝 감탄까지 했다. “아니, 얘가 정말로 동지들한테 연대를 정말 잘하네. 연대견이네.” 천막에서 데리고 자게 개를 놓고 가라고까지 하시니 둥둥이가 밥값 하는구나 싶어 장했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어느 주말에 혼자 갔더니 조합원들이 둥둥이부터 찾았다. “아니 연대견을 왜 안 데려왔어. 연대를 해야지!” 아저씨들은 “투쟁!” 하는 구호에 둥둥이가 앞발을 들도록 가르치려고 계속 시도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둥둥이에게 연대견 노릇은 착실히 시켜볼 생각이다. 둥둥아, 우리 꼭 새해엔 더 강력히 연대하자!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현진의 동물애정생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