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2.10 20:11 수정 : 2016.02.11 10:29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충청도 생활이 2년째 접어들었는데도, 충청도 사람들의 미묘한 매력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다. 평생을 경상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라왔고, 일 때문에 만난 전라도 사람들과 복닥거리면서 살아온 내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오래 알아도 알 듯 말 듯 한 충청도 사람들은 신기하다 못해 신비했다.

‘가셔’, ‘보셔’, ‘쉬셔’, ‘드셔보셔’ 등 반말인지 온말인지 나를 위해주는지 막 대하는지 알 수 없는 말 끊음새부터, 경상도처럼 우악스럽지도 않고 전라도처럼 드라마틱한 리듬도 없으면서 조곤조곤 한번 터지면 말 잘하는 충청도 사람들은 자기네 입으로도 “충청도 사람들 의뭉스럽다”고 했다.

충청도 생활 첫해에 주운 유기견 둥둥이. 사진 김현진 제공

“속을 알 수가 없지. 선거 때 봐봐.” 하기야 개표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내 주제에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충청도 생활 첫해에 주운 유기견 둥둥이(사진)는 내가 처음 만난 그 지역 개였다. 바삐 서두르지도 않고 말 그대로 ‘둥둥’거리는 걸음으로 나들목과 바로 연결되는 네거리에서 1차선 한가운데를 좌회전 신호를 받아 건너가고 있는 개를 보고 나는 경악했다. “쟤가 자동차야, 뭐야!” 얼른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개를 주워들었을 때 둥둥이의 표정은 이제 보니 그런 얼굴이었다. “누구셔(슈)?”

사람 화장실에서 저도 대소변을 가리는 습관은 신통했지만 ‘응가’하러 가는 것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으면 둥둥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늘 ‘척’ 뒤를 돌아보고는 ‘휙’ 하고 돌아서서 화장실을 나와 버리곤 했다. 그때 둥둥이의 표정은 이런 거였던 듯도 하다. “일보는데 뭘 빤히 보고 그러셔(슈).”

충청도 출신 친구에게 이 개 이야기를 하자 낄낄 웃었다. “우린 원래 그래. 어떤 할아버지가 젊고 예쁜 여자를 빤히 쳐다봐서 할머니가 ‘그렇게 좋으면 쟤랑 살아!’ 하고 소리친다고 해봐. 그럼 경상도 할아버지는 ‘큼’ 하고 말고, 전라도 할아버지는 ‘나 간다잉?’ 하고, 충청도 할아버지는 이런다고. ‘아니 쟤라니. 저 사람 엄연히 으른(어른)이여!’ 우린 김종필을 낳은 고장이야. 우릴 믿지 말라고.”

내 다른 충청도 친구도 동향 사람들 속을 알 수 없다고 목청을 올렸다. “김대중·노무현 빨갱이라고 그렇게 싫어하는 우리 엄마가 말이야, 안희정이 좋대! ‘얘, 글쎄 그 사람 옥고도 치렀다며?’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래요.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전두환이 보냈죠.”

작년 여름, 폭염보다 나를 더 지치게 한 것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우울증이었다. 불면증까지 겹쳐 4~5일 동안 한숨도 못 잘 때면 날씨까지 거들어 지옥의 전야제를 보는 듯했다. 그동안 둥둥이는 개의 습성을 별로 보여주지 않아 엄마와 나를 당황하게 했다. 공 던져 주면 멍하니 사람 무안하게 하기, 이리 한번 오라고 엄청나게 빌면 정말 곤란해 죽겠다는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오기, 산책을 나가면 ‘닭둘기’ 같은 속도로 걷다가 다른 개를 보면 기겁하기, 사람이 나갔다 들어와도 힐끗 쳐다보는 게 끝이고 안아주려고 하면 조금 참다가 끙끙거리며 탈출해 내외하기 등등…. 지금 보니 그 모든 것은 충청도적 시큰둥함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장하다, 둥둥이! 자고로 개란 먹여살리는 대가로 귀엽게 굴어야 한다는 내 편협한 생각을 작살낸 충청도의 애견이여!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그러다 우울증이 거의 나를 끝낼 뻔한 아침, 며칠째 침대에 누워 잠 못 이룬 몽롱한 의식 속에 온갖 괴이한 망상이 떠다닐 때 문을 박박 긁는 소리가 들렸다. ‘콩’ 하고 한번 짖는 적도 없던 둥둥이가 자기 주장을 하고 있다니 놀랄 노자였다. 엄마가 문을 열어주자 둥둥이는 웬일로 전속력으로 달려와 침대 위로 뛰어오르더니 내 얼굴을 몇번이나 확인해보고는 얼굴을 핥고 또 핥았다. 아니 얘가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음독자살이라도 한 줄 알았나, 싶었지만 지금 보니 둥둥이는 나름 그런 말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물론 충청도 사투리로. “야야, 괜잖은겨? 증신(정신) 좀 차려 봐, 별일 없는겨? 살은겨? 살어야 하는겨!”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현진의 동물애정생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