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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둥이. 김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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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그럭저럭 유기견이 눈에 띄는 대로 족족 가져다 키운 지도 15년이 되어간다. 사설 보육원 같은 걸 차렸던 셈이다. 아직도 포털 뉴스에 끔찍한 동물 학대 실태 같은 게 나오곤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랄까, 이런 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걸 내 몸으로 느낀다. 사람들이 개 많이 갖다버리던 시절에는 주워오느라 내 몸이 힘들었는데, 동물등록제가 시행되고 동물 학대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나아졌다는 것을 버려진 개 숫자가 한결 덜한 거리를 볼 때마다 새삼 느낀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집에 개 키운다고 하면 비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우습게도, 집 없는 개를 데려다 키운다고 하면 좋은 일 하신다고 손이라도 붙잡고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자들인데, “돈 많은가봐. 개도 키우고. 나도 좀 도와줘라” 하는 사람들은 죄다 남자들인 것은 대체 왜일까. 물론 안 그런 남자들도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남자다운’ 남자들이 좀 비웃을 만큼 감수성도 있고 좀 섬세하고 이런 사람들이다. 같은 남자끼리 “걔 정말 싸나이야” 하며 서로 추어올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집 없는 개 주워다 키우는 걸 왜 이리 아니꼬워하던지 참 신기한 노릇이다. ‘남혐’으로 치부된다 해도 할 수 없다. 무려 15년간 남자다운 남자들한테서 똑같은 말을 듣다 보면 처음에는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다가 나중에는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이들이 집 없는 개 사료비로 충당되는 내 돈으로 자기 술이나 사달라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가 됐든 “어디 후원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들은 “돈 많네. 그 돈으로 나 맛있는 거 사줘” 같은 말을 거르는 법이 없다. 정치 이야기는 그렇게 목이 터지게 하고 싶어하면서 내가 당비 내고 있는 건 자기 돈처럼 아까워하는 이유는 왜일까. 하다못해 흔해빠진 불우이웃 돕기에 동전 몇개 내는 걸 봐도 “내가 불우이웃이야. 나 좀 도와줘” 이러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남자다운’ 남자들인 걸까. 이런 게 남자다운 이야기인 걸까. 쓸데없이 길거리 똥개들에게 갈 돈을 싹 다 끌어모아 빈틈없이 제 가정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남자다운 모습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그간 버려진 개들과 함께 살아오고 그들에 대한 남녀노소의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알게 된 삶의 진실이랄까 슬픔이랄까 하는 건 이런 거다. 약한 자를 함부로 비웃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결코 쉽사리 약한 자를 돕는 일은 없다는 것. 아프고 약한 이들을 동정하고 주머니의 동전이라도 내놓는 이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지금 약하거나, 한때 약했던 사람이라는 것. 약함을 증오하는 강한 이들은 자기 주머니에서 뭐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내 돈으로 내가 주워온 개 사료 사는 것도 자기 돈 쓰는 것처럼 아까워한다는 것. 뭐든 악착같이 편승해 결코 손해 안 보는 사람들이 항상 “돈 많이 들지 않아?”, “돈 많나봐?” 하며 번번이 ‘돈돈돈’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 돈을 강도질해와서 개 사료 사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난리치느냐고 악을 쓰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버려진 개 입에 들어가는 사료값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처럼 원통하게 여겼다. “그럴 돈으로 사람이나 도와줘” 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돕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이 소위 ‘잘사는’ 사람들이란 걸 안 것은 내가 개 버리는 쪽이 아니라 개 줍는 쪽의 사람이 된 지 15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삶의 방식을 처음 개를 주울 때 이미 선택해버린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불우이웃인 주제에 불우한 개와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유기견에게는 진료비를 잠자코 절반이나 깎아주는 동물병원에 다닐 것이다. 가끔 사료값 하라고 돈을 쥐여주는 사람들에게 얼굴 들지 못하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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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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