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4.06 20:40 수정 : 2016.04.07 10:48

유기견 둥둥이. 김현진 제공

[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10대 후반, 그러니까 세상이라는 곳에 나와버렸고 이제 여기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아갈 즈음, 난 도저히 풀 수 없는 퍼즐, 내 힘으로 절대 열 수 없는 문 앞에 선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여기 태어나 버렸으니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과 같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태어난 지 십몇년이 되어도 알 수 없는 것이 슬프고 절망스러웠다. 그 절망의 이유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미워해야 할지는 충분히 잘 알고도 남았다. 태어나서 받은 대로 돌려주기만 하면 되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때리고 상처 주는 것은 차마 배우고 싶지 않았으나 배워버린 것들이었다. 지금은 부모님이 나를 사랑했음을 알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상에 나와서 만난 최초의 사람들, 그리고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 소통한 방식이 폭력이었다는 것은 이후로도 나를 아주 오래 붙든 덫이 되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공상과학 같은 꿈이었고, 육친에게서조차 사랑받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자기 자신을 함부로 하는 데 가속을 붙였다.

이 글의 연재를 마치는 지금에야 <애정동물생활>이라는 제목이 어디서 왔는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구겨진 신문지 같은 나에게도 애정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딘가에 준 적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를 스쳐간 동물들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조건과 대가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일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애정을 배우는 것은 그렇게도 쉬웠다. 20년 가까이 몰랐던 것들을, 10마리 넘는 개들이 거리에서 길을 잃거나 버려졌다가 우연히 나를 만나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는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개들은 나에게 더 나은 인간이 되라고 짖지 않았다. 더 비싼 사료를 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비싼 개집이나 마약 방석을 바라지도 않았다. 개들이 원한 건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숨쉬듯이 쉽게 애정을 배울 수 있었고 자전거 타는 법을 한번 배우면 잘 잊지 않게 되듯 하나의 숙제는 마쳤으나, 내가 배울 게 더 남아 있다는 걸 안 것은 서른을 넘긴 후였다. 불의의 사고로, 그것도 너무나 끔찍한 방식으로 내가 가장 사랑한 개를 잃고 난 뒤 이번 달로 3년째가 되지만 나는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 어떤 재산과도, 자식과도, 심지어 나 자신은 물론 내가 가진 그 무엇과도 그 개와 바꿀 수 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과도한 애정이라 하겠지만, 애정을 과도하다고 할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실제로 나는 육친의 죽음을, 여기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이겨냈다.

성서에는 아들 압살롬을 잃은 다윗의 모습을 간략히 묘사한 구절이 있다.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그것은 지난 3년간 한결같았던 내 마음이었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이 3년 동안 목숨은 참 고맙고 황송하지만 내게는 너무 과분하고 버거운 선물 같았다. 왜 네가 죽고 내가 살았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살지 않고.

애정을 배우기는 너무나 쉬웠다. 정말로 어렵게 배워야 했던 건 고통이었던 것이다. 왜 내가 죽지 않고 네가 죽어야 했는지, 왜 내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어야 했는지, 목숨보다 귀한 것을 잃어버리고도 계속 살아야만 하는 삶이란 게 무엇인지, ‘그까짓 개새끼’라는 말들 앞에서 내줄 말 없이 참고 지나가는 계절 속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게 뭔지….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언제까지 문 위층에서 울고 있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고통이라는 것을 배우게 될 때쯤, 나의 애정동물생활은 아마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끝>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현진의 동물애정생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