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8 20:27
수정 : 2015.03.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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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윤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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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홍윤주의 네 방을 보여줘
신정동 윤씨(28살·가야금 연주자)와 안씨(29살·배우)가 사는 옥탑방: 방 1, 주방, 욕실, 옥상 마당(월세 25만원, 보증금 500만원)
2014년 윤씨는 안씨와 함께 서울 신정동 옥탑방에서 생애 첫번째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땐 누릴 수 없었던 자유로운 음주생활에다 통금 해제로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다. 두 명랑처자들은 자신들의 첫 자취처인 옥탑방을 ‘옥타곤’이라는 유명 클럽의 이름을 따서 ‘클럽 옥탑곤’이라 명명했다. ‘클럽 옥탑곤’은 5층 옥탑방인데 현관문이 따로 없이 계단실에서 나무로 된 문을 열면 바로 방이 나온다. “이걸 보고 처음에 놀랐어요. 그냥 방문이라서.” 문 앞 계단실을 현관이라고 상상해버리기로 했다.
“공간이 좁은데 둘이 사니까 짐을 줄이는 것이 목표였어요. 처음에 가스레인지랑 냉장고도 안 들여놓으려고 그랬는데, 그건 안 들이면 못 사는 거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그런 말씀 하시잖아요. 결혼하면 살림 하나씩 장만하는 맛으로 사는 거다. 원래는 휴대용 버너를 썼었는데 제가 가스레인지를 사서 한 20분을 들고 왔어요. 정말 신이 나서 들고 온 거예요. 한쪽엔 국 하고 한쪽에선 고기 굽겠다고, 꿈에 부풀어서 들고 온 다음날 손목이 완전 나가가지고… 가야금 연주해야 하는데.”
지금은 세탁기가 없어서 수건을 아껴 쓰고 있다. 자취 전에는 머리 수건 따로, 몸 수건 따로 쓰고 던져놓고 그랬는데 자취하면서부터는 수건 하나로 다 쓰고 말려서 다음날 아침에 또 쓰면서 잘 마른 수건이 아주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윤씨와 안씨는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함께 가계부를 쓰면서 이 집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진짜 생활을 터득하고 있다.
대부분의 옥탑방은 장점이 단점이다. 채광이 좋다고 쓰고 여름에 덥다고 읽는다. 환기가 잘된다고 한다면 겨울에 춥다고 알아들어야 한다. 지난여름, 태양에 녹는 밀랍인형이 떠올려지는 더위를 겪었다. 이제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옥탑방은 건물 꼭대기에 있던 물탱크실이나 계단실을 방으로 사용하면서 화장실과 주방이 불법적으로 덧대어져 만들어진 주거공간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만들어져 허점이 많은 대신 임대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독립생활자들의 첫번째 정류장 같은 곳이다. 나 역시도 첫번째 자취방을 옥탑방에서 구했다. 반지하방이었다면 더 넓고 덜 춥겠지만 대신 옥탑방에는 마당처럼 쓸 수 있는 옥상이 있고 펜트하우스 못지않은 전망이 있다.
건축,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등을 다루는 대중매체들은 평균적인 개인의 공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급스럽고 정갈하다. 상대적으로 비루한 현실의 개인공간은 뒤로 감추게 되고, 자신과 자신의 방을 분리하여 인식한다. 공간은 나를 반영한다. 사물들은 나의 생활에 따라 움직이고 방의 모습을 만든다. ‘네 방을 보여줘’에서는 평범한 생활공간을 기록하려 한다.
이사 가서 내가 처음 하는 행동은 낯설고 휑한 벽에 좋아하는 엽서나 사진들을 붙이는 것이다. 새로 산 물건보다는 아끼던 물건들을 눈에 띄게 배치하면서 ‘내 공간’이라는 영역표시를 하곤 했다. 낯선 공간에서 안정감을 찾기 위한 본능인 것 같다. 방의 크기, 방문과 창문의 위치 등 공간이 가진 조건과 내가 가진 가구의 크기와 분위기를 조율하면서 안정을 찾아간다.
‘클럽 옥탑곤’은 윤씨와 안씨의 이불을 펴면 그걸로 끝인 작은 방이다. 그럼에도 각기 다른 벽에 자기 책상과 수납함을 붙여 각자의 영역을 나눴다. 벽에 걸린 옷걸이도 그냥 걸어놓은 것 같지만 경계가 있고, 옷 넣는 수납주머니도 한줄씩 나누었다. 안씨는 쌓아놓는 스타일이고 윤씨는 벌여놓는 타입이다. 밤에는 둘의 영역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강이 흐른다. 개성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작은 공간에서조차 각자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물과 습관들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에 스며들고, 공간은 나를 반영하게 된다. 옥탑방 한 귀퉁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홍윤주 건축가·생활건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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