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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5 20:16 수정 : 2015.03.13 14:21

사진 홍윤주 제공

[매거진 esc] 홍윤주의 네 방을 보여줘

문래동 송씨(31살·가구디자이너)가 사는 한옥집: 방 3, 거실 겸 주방, 옥외 화장실, 창고 2, 마당(월세 30만원, 보증금 300만원)

그럴듯한 모험담을 몇 개씩은 가지고 있을 듯한 고수들이 모여 있는 철공소 밀집지역, 영등포 문래동. 비슷비슷한 골목을 굽이굽이 몇 번을 꺾어 들어간 뒤에야 송씨의 집에 도착했다. 낮에는 철공소에서 일하는 소리로 시끄럽고 밤에는 어두운 이 동네는 작업실을 오가는 사람들은 많은데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철공소나 공업소에서 가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얻기 쉬운 동네에 송씨가 사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마당을 포함해 30여평 정도 되는 집이 월세 30만원이라니. 서울에서!

2500원짜리 짜장면 같은 이 월셋집은 주방 겸 거실과 방 3개, 옥외 화장실 1개, 창고 2개, 중정형 마당과 장독대로 쓸 법한 낮은 옥상을 가지고 있는 도시형 한옥이다. 오래된 지붕에는 방수천이 씌워져 있고, 사람이 살 만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무너지진 않을 것 같았다.

전에 살던 상봉동의 한 오피스텔은 관리비를 내면 잠만 잘 수 있을 정도로 관리해주는 완제품 같은 공간이었다면 이 집은 반제품이었다. 창작 본능이 충족되는 이 집을 한달 동안 열심히 수리하고 꾸몄다. 집을 고치는 과정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는데 돌이켜보면 희한하게 즐거웠다. 오래된 도배지를 벗겨내는 일은 유적 발굴과 비슷했다. 벽지 뜯어내기는 끝이 안 보이다가 마지막엔 70년대 날짜가 찍힌 신문지가 나오더니 그 아랜 다 허물어져가는 흙벽이었다. 흙벽 아래쪽은 다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고민하다가 바로 옆집 건재상에서 파는 시멘트 블록이 생각났다. 시멘트 블록을 쌓아서 흙벽도 보완하고, 선반으로도 쓴다. 값도 쌌고 검은색과 흰색, 고재와 조합해보니 보기에도 괜찮았다.

사진 홍윤주 제공
송씨는 화려하지 않은 단순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조금은 남성적인 느낌도 주면서. 한옥 분위기에 젖은 나머지 너무 오래되어 보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검은색은 포인트 역할을 하면서도 튀지 않으니까 전체적으로 검은색과 흰색을 기본으로 바탕을 만들었다. 바닥은 장판이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 느낌이 싫어서 부모님이 쓰시던 오래된 카펫을 깔았다. 쌍팔년도엔 제법 산다는 사람들이 깔았을 법한 붉은색 바탕에 가장자리에는 화려한 무늬를 뽐내는 카펫은 차가워 보일 수 있는 흰색 벽에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는 사물에도 온도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가구나 사물을 만들고자 한다.

별채처럼 자리잡고 있는 침실로 가려면 거실에서 신발을 신고 마당을 지나 다시 신발을 벗어야 도착할 수 있다. 철공소 거리 한옥에서 살면서 송씨의 삶은 번거롭고도 여유로워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서 평온하게 멍때리는 낭만 같은 것이 생겼다. 물론 불편한 점은 당연히 있다. 화장실은 밖에 떨어져 있고, 전기패널로 난방을 하는데 전기세가 겁나서 난방을 못 한다. 전기온수기 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데워지는 것이 아까워 커피포트로 데운 물을 모아서 씻는 데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부지런해지진 않아요. 안 씻게 돼요.” 대신 생활의 절차가 버라이어티해지면서 삶이 풍성해졌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임대로 사는 가구가 60%인 서울에서 건물주인의 간섭 없이 벽에 못을 박을 수 있는 집은 별로 없다. 가구 배치나 커튼 색깔 바꾸는 정도의 꾸밈 말고는 뭘 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새 건물일수록 월세도 높고 집주인의 간섭도 예민하다. 오래돼서 낡은 집의 장점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취향대로 고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집주인과의 계약 전에 협의가 있어야 한다. 집을 고치면 공사비가 들지만 임대기간으로 나누면 매월 10만원 정도를 더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상하다. 임대료는 다 냈는데 왜 못 하나도 맘대로 못 박는지. 그리고 왜 공간을 누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고분고분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살아야 하는지. 이사 나올 때 못을 빼고 나오든, 도배를 다시 해주고 나오든 하면 되지 않나? 적어도 2년은 살 집인데.

홍윤주 건축가·생활건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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