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5.20 19:25 수정 : 2015.05.21 11:15

사진 홍윤주 제공

[매거진 esc] 홍윤주의 네 방을 보여줘

경리단길 홍씨(40대)가 사는 단층주택: 방2, 주방, 화장실, 창고, 마당(월세 30만원, 보증금 1500만원)

친구 작업실과 지인의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홍대 앞, 친구 따라 강남 가듯 2003년쯤 서교동으로 이사를 했다. 방 3개짜리 단독주택 2층을 빌려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 서교동엔 단독주택이 많고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어 가을만 되면 감 따는 풍경이 참 좋았다. 홍대 앞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전파사나 철물점이 술집과 카페, 옷가게로 바뀌었다. 주택가 골목까지 들어온 이들이 밤늦게 떠들거나 전화통화를 하면 목소리가 울려 잠을 방해했고 주택들은 하나씩 가게로 변신하고 있었다.

당시 직장은 삼청동 한옥이었는데, 야근 뒤 버스가 다니는 길까지 내려오는 북촌 골목길은 사람 없이 조용했던 반면, 버스에서 내려 서교동 집까지 걸어오는 홍대 앞은 시끌벅적 불야성이었다. 극단의 장소를 매일 경험했다. 2007년부터 삼청동이 전통 한옥마을로 언론에 노출되었다. 점심 먹고 찻집에 앉아 있으면 대포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의 렌즈를 피해 고개를 숙여야 했고, 회사가 있던 골목의 할머니는 비싼 값에 한옥집을 팔고 떠나셨다. 제일 먼저 ‘커피빈’이 생기더니 편의점도 생겼고, 옷가게, 와인집, 고급식당들이 생겨났다. 회사로 쓰던 한옥집 주인이 임대료를 너무 올려서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복잡한 홍대 앞을 벗어나고 싶어 조용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히 골목 구석의 괴상한 집을 발견하고는 2009년부터 경리단길 안쪽 주택가에 살기 시작했다. 이태원 거리는 관광지로 화려해도 경리단 쪽은 오랜 거주지가 있어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다. 특히 골목 안쪽의 이 집은 산사처럼 조용하고 남산이 가까워 산새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작은 흙마당에 텃밭도 일구고 있다. 인사하는 동네 주민들이 늘어나고 옆집 할머니 덕에 이 집 저 집 사정을 알아가면서 이 삶터의 일원이 되어가는 일이 기분 좋았다. 400년 전통의 부군당(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 있는 동네 주민이 된 것이 자랑스러웠고, 작년부터 지역 산악회 전단지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기회를 보고 있다.

작년 말부터 관광객들이 경리단에 모여들면서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꽉 채운 사람들에 놀라고, 처음으로 경찰이 경리단길에서 교통정리하는 모습에 놀랐다. 경리단길은 이태원로가 막힐 때 한남동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는데, 그 기능을 잃었다. 집은 아직 조용하지만, 거리에 몰려다니는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다. 잡화그릇가게가 사라지고 술집이 생겼다. 이불가게가 사라지고 ‘파리바게뜨’가 생겼다. 조명을 고쳐주셨던 남산전기 사장님도 떠났다. 이제 이불이나 그릇을 사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 방송에 대고 “핫한 동네”라고 하는 유명인들도 이 변화에 한몫씩 하고 있다.

같은 현상이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다. 심지어 제주도까지. 주민이 이용하던 생활가게 대신 외지인을 위한 술집과 카페가 생기고, 불법주차 때문에 사람들은 도로로 걷게 되거나 차가 밀리다 못해 인도의 사람까지 밀리는 상황이다. 더 심각한 것은 경쟁적으로 주택을 상가로 바꾸고, 월세가 몇배씩 오르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권리금 폭탄이 점점 부풀어 간다는 점이다. 이전 동네에서 학습한 부동산 생리를 너도나도 재빠르게 응용하면서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임대료를 일정 범위 안에서 제한하는 상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유시장 원리에 위배되며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사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사는 곳마다 뜨는 동네가 되었다. 예지력이 있나? 나는 힙스터인가? 반문도 한다. 밤늦게까지 여는 술집이 없어서 어두컴컴했던 골목은 불빛과 음악과 외지 사람들로 채워지고, 주거지로 생활했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있다. 이런 것이 경제 활성화인가?

홍윤주 건축가·생활건축연구소 소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홍윤주의 네 방을 보여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