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08 20:16
수정 : 2015.07.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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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윤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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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홍윤주의 네 방을 보여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테리어 잡지의 공간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실재 생활공간과는 동떨어져 있다. 멋지게 꾸며진 사진 속 공간과 정리되지 않은 내 방을 비교하다 보면 비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 속 공간의 진실은 전문가의 연출이 들어간 전문 사진가의 작품이면서 가끔 협찬사의 아름다운 소품이 첨가되기도 한다.
한편, 나에게 맞는 공간을 직접 만들고 꾸며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디아이와이(DIY)조차 결과물을 자랑하는 웹상의 사진에는 엉뚱하게 장미꽃잎이 뿌려져 있기도 하고 이국적인 패브릭이 생활과 상관없이 보기 좋게 늘어져 있기도 하다. 잡지 사진을 그대로 따라 한 포샵질 사진을 보고 뭔가 기형적이라 느꼈다. ‘네 방을 보여줘’는 이웃들의 자연스러운 공간을 노출시키면서 잡지 속 공간과 실재 내 방의 간극을 줄이고 싶어서 시작했다.
연재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남의 일을 잘 도와줘서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줄 것 같았던 이는 여태까지 자기 방에 여자친구까지도 들인 적이 없다면서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그 공간은 자신의 뇌를 펼쳐놓은 것이라는 말과 함께. 반대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보여주길 바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 중간 단계인 허용하는 만큼만 보여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또 있다. 공개 가능한 정도의 차이도 다른데 공간을 전유하는 방식도 분위기도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 다르다.
방은 ‘건축물의 내부에서 벽이나 칸막이로 구획하여 사람이 생활하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다수가 경제적 수준에 맞는 기능을 소화할 수 있는 규모 이외에 ‘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쭉 옆에 있었던 엄마처럼. 엄마라는 사람의 정체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잖아. 그냥 엄마지. 방은 어떤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그곳에 고정되어 있어서, 생각할 대상이 되어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냥 방이지. “당신에게 ‘방’은 뭔가요?” 생각해보면 방 안에서 별짓을 다 한다. 어디서 내가 이런 짓을 맘 편히 하겠나. 정신줄 놓고 침 흘리면서 자고, 생리현상인 방귀를 뀔 때도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공간. 시선의 공격이 없는 폐쇄적 공간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젊은층에서는 외관을 포함한 집의 형태를 갖는 것으로부터 점점 밀려나면서 건축물 내부의 ‘방’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현실에 왔다. 큰 방 하나를 친구랑 둘이 쓰는 20대는 ‘내 방’은 못 가지고 ‘내 책상’에 집착한다. 딴 사람들은 혼자 외롭게 있는 게 싫어서 늦게까지 논다고 하면, 그는 혼자 있고 싶어서 밖에서 시간을 주로 보낸다.
함께하는 하숙보다는 개별로 움직이길 선호하면서 방의 존재는 더욱 공고해졌다. 고시원을 포함한 원룸 형태의 자취방은 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하다. 영역의 경계가 뚜렷한 이 방은 여지없이 문을 닫으면 단절이고, 문을 열면 노출이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혼자여야 하지만 ‘함께’와 ‘혼자’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방 3개짜리 집을 빌려 친구 두명과 사는 30대는 한번은 여자들과 또 한번은 남자들과 각방을 쓰며 살아봤는데, 같은 여자들과 살 때는 스스럼이 없어서 편하긴 했지만 사적인 이야기들이 광범위하게 오고 가더니 사생활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남자들과 살았는데 일단 경계가 확실해서 사생활 침해 같은 것은 없었지만, 좌변기를 함께 쓴다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셰어하면 표면상의 삶의 질은 올라간다. 혼자 가진 돈으로는 단칸방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지만, 함께 모여 살면 거실과 주방이 널찍한, 심지어 마당 있는 집에서까지 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고 배려할 체력이 되지 않는다는 40대는 사람마다 위생의 정도, 공개의 정도, 공과금 날짜 지키기 등등 기준들이 다 달라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반복되는 거슬림이 몇 년간 쌓여서 결국 혼자 살고 있다. 언제 또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같이 살지도 모를 일이지만, 현재는 반경 200m 안에 친구가 있는, 혼자 사는 작은 집에 만족하고 있다.
홍윤주 건축가·생활건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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