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22 18:36
수정 : 2015.07.23 10:47
|
사진 홍윤주 제공
|
[매거진 esc] 홍윤주의 네 방을 보여줘
홍은동 신혼부부 마씨와 박씨의 집:
방2, 부엌, 거실, 화장실(월세 35만원, 보증금 2000만원)
정말 다른 개성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동갑내기 부부는 음악으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 집에서는 함께 음악 작업을 한다. 인터뷰하는 동안 새로 작업한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아내가 작곡하고 남편이 마스터링한 음악에는 부부의 목소리가 담겨 흘렀다.
결혼 생각도 없이 살다가 땡전 한푼도 없이 어떻게 결혼까지 했는지 본인들도 모른다. 부모님께 보증금 보조를 받고 “재개발하더라도 2년은 살 수 있어”라는 말에 서울 염리동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재개발구역으로 묶인 지역은 임대료가 낮다. 노후한 지역이기 때문에 싸기도 하지만, 앞으로를 예상하기 힘든 위험부담도 있기 때문이다. 목수를 겸하는 남편은 이 집에 맞게 가구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취하던 아내의 짐을 옮기는 날, 한달 안에 집을 비워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일 때 집도 알아봐야 하는 정신없는 와중에 동네는 점점 삭막해졌다. 철거 관계자들은 일부러 빈집의 유리창을 깨고 거주자들에게 툭하면 시비를 걸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이주비용을 받아 나간 상태라 이사비도 못 받고 또 이사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고 난 후, 활동반경과 비용을 고려하면서 재개발구역을 피해 홍은동까지 와서 새집을 찾았다. 3층 규모의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 안, 다가구주택 1층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
사진 홍윤주 제공
|
놀랍게도 염리동 집에 맞췄던 가구들이 이 집에도 딱딱 맞아 들어갔다. “여기 놓는 것보다 저기가 나을 것 같아.” 그러면서 조금씩 위치를 바꾸고 있다.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나무에 칠마감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고양이는 신나서 여기저기 긁고 있다. 큰방 한켠엔 건반과 음악장비들이 있고, 직접 만든 2층 침대 밑에는 기타들이 놓여 있다. 작은방은 옷방과 창고로 쓰고 있다. 크기도 제각각인 나무토막들을 어디 넣어둘 수도 없어 아내에겐 처치 곤란이지만, 남편에겐 언제든 긴요하게 쓰일 자재들이다. 주방에는 곡선이 아름다운 앤티크 식탁이 놓여 있는데, 굳이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친정엄마의 혼수선물이다. 친정집처럼 넓은 집 한가운데에 멋지게 있어야 할 식탁의 존재감은 민망하다. 모든 가구를 벽에 붙여야 하는 좁은 집에서 딱 붙지도 않아서 벽과 둥근 식탁 사이로 자꾸 뭐가 빠지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심지어 좁은 문으로 들여오다가 심하게 긁혀서 속상하다. 필요없는 데 돈 쓰는 것이 싫어 거절해도 부모님들은 뭐라도 해주시고 싶으신지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장롱이라도 하나 있어야 되는 거 아냐?” 필요없다 하고 옷방을 만들었다.
홍은동 집 앞 골목은 명지대가 가까워서 대학생들의 오작교 같다. 싸워도 꼭 왜 이 골목인지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목격하게 되는 이곳은 아파트키드로 살아온 아내에게는 신기한 곳이다. 이웃 간의 거리가 일정한 아파트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거리감이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아파트에서 이 정도 크기의 음악을 튼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데, 이곳 역시 주거지역임에도 기타 쳐도 소리에 관대하다. 미세한 오류들을 잡아내거나 여음이 어느 정도인지 잡아내는 데에는 소리를 크게 키워 듣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내의 소음 검열 수준을 넘어선 남편의 대범한 음량은 불안하다. 남편은 어느 크기까지 이웃들이 허용하고 있는지 시험한다고 항변한다. “일부러 반칙을 크게 해보고 그 선이 어디까진지 알아보고 지킨다고.”
남편: “물욕이 있는 건 아닌데 필요한 거 있으면 뭐 만들면 되니까. 그런데 그랜드피아노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거는 좀 부럽더라고요. 아예 한 방을 녹음실로 만들어놓고 생활은 생활대로 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아내: “저는 이 집 꽤 넓어서 좋은데. 책도 책인데 장비랑 기타들 엄청 차지하잖아요. 이 정도면 넓은 것 같아요. 저희 돈에 장비 다 놓고 세팅하면서 쓸 수 있다는 것은 사실….”
홍윤주 건축가·생활건축연구소 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