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19 20:34
수정 : 2015.08.20 13:42
|
사진 홍윤주 제공
|
[매거진 esc] 홍윤주의 네 방을 보여줘
경기 안양시 박달동 이씨와 정씨 부부의 집: 방3, 주방, 거실, 욕실(집주인)
이씨는 정교하고 덤덤한 기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디자이너이고, 정씨는 시원한 필력으로 생생한 생활을 담아내는 그림작가다. 결혼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각자 경제를 책임진다. 장을 보더라도 한번은 이씨가 다음은 정씨가, 뚜렷한 경계는 없지만 나누어 생활한다. 정씨는 정기지출을 빼고 통장 잔고가 10만원 아래로 될 때 불안함을 느낀다. 얼마 전 건강 문제로 ‘알바’도 못 하게 되면서 통장에 경보음이 울렸지만, 이씨에게 말도 못 했다. 그러다 수명 다한 노트북이라도 팔아야겠다며 의논하면서 알리게 되었다. 이씨는 쉬어야 한다며 처음으로 정씨에게 돈을 주었다. 그 코 묻은 돈을 받는 것이 굴욕이었는데, 올해는 1년간 정기수입이 생기게 되어 한결 맘이 편해졌다.
누구나 꿈꾸는 ‘갑’, 집주인. 이씨와 정씨 부부는 집주인이다. 2013년 결혼과 동시에 공인중개사인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좋은 기회로 나온 집이라며 이 집을 안겨주셨다. 2층엔 부부가 살고 나머지는 임대용으로 반지하엔 방 1개씩 4가구, 1층에 방 2개씩 2가구가 산다.
평생 직장생활을 해본 적 없고 작가이면서 집주인이라는 타이틀만 보면 모두 부러워할 테지만, 헝그리 정신으로 ‘알바천국’ 저리 가라 수준의 알바를 하며 최소 지출로 생활해온 이들에게 이 집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 짐이 되고 있다. 처음엔 신혼인데다 내 집이 생겼다는 설렘에 신이 났지만, 1980년대에 지어진 이 집은 낡을 대로 낡아서 들어오자마자 수리의 연속이었다. 모든 설비들이 낡았다. 보일러 교체 비용이 70만원이었는데, 한참을 망설이니 보일러 기사는 중고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보일러를 해결했고, 바닥 배관청소를 해서 난방효율을 높였다. 녹물이 나와 모든 수도에 정수기를 직접 달았다.
이 시기에 지어진 벽돌건물에는 돌출창문이 있고, 지붕과 돌출창문 사이는 곧 비둘기집이다. 계속 울어대는 비둘기 소리는 경험해본 사람들만 안다. 비둘기를 쫓아내느라 소리지르고 빗자루로 쫓고 심지어 고무줄총까지 쏴봤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이 그렇게 강할 줄 몰랐는데, 때론 방충망으로 돌진하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비둘기는 자기보다 큰 독수리 같은 맹금류를 무서워해서 모형이 있으면 제일 좋고, 모형이 없으면 실루엣이 강하게 드러나는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놓는 것도 방법이다. 정씨는 부엉이와 독수리를 크게 그려서 창문마다 붙여놓았다. 효과를 봤다고 믿는다.
벽으로 물이 스며서 외벽에 발수제를 발라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쌌다. 재료만 구해서 직접 하자 생각하니 건물이 너무 높아서 부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제작과 기계 쪽으로는 나름 만능해결사인 이씨에게도 고치려고 맘먹으면 너무 비싼 게 얼굴을 드러내고, 뭔가 다 될 것 같으면서도 풀기 어려운 지점들이 산재해 있다.
집주인 된 지 2년이 되니 보증금이 적은 집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했다. 보증금이 제법 되는 2500만원 세입자의 계약만료가 다가왔을 때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당연히 세가 나갈 줄 알았는데 쉽게 되지 않는 거다. 더이상 대출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영세민 대상으로 정부에서 전세금을 대주고 이자만 내는 복지혜택을 받는 세입자를 부동산 소개로 맞아 위기를 모면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세입자들이 말을 걸어오면 덜컥 ‘을’의 자세가 된다.
주변에 새로 짓는 집들이 계속 늘어나고 하드웨어가 낡아 경쟁력에서 밀려나니 점점 싼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식이다. 점점 코너에 몰리고 있다. 집을 갖기 전에는 머릿속 95%가 작업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집이라는 존재가 상당 부분 차지하면서 혼란스럽다. 집을 팔자니 뭔가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심정이 복잡하다. 규모를 줄여서 부부만 살 집으로 조정하든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는 걸 느끼지만 둘 다 ‘그쪽으로는 바보여서…’라고 걱정하는 집주인들이시다. 사실 이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나도 막연히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경제개념이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그 스트레스가 쉽게 이해되었고 포기도 쉽게 되었다. 자본 규모의 문제만이 아니라 관리 차원의 문제다. 건물 유지와 세입자 흐름을 관리할 의지도 머리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집주인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끝>
홍윤주 건축가·생활건축연구소 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