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01 21:24
수정 : 2015.04.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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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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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갓 퇴직한 남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M(엠)이 있다.
먼저 멘탈리티(Mentality), 정신력.
아무런 계획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정신이 정상적인 범주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에 대한 고민과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다음이 자기를 방종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라 해도. 신선놀음을 위해 퇴직을 결심하는 건 진짜 ‘신선’이거나 몇몇 ‘상속자들’인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모든 퇴직자들은 정신적으로 단단하고 견고하게 무장한 상태다. 그렇지 않고는 보장된 안정을 스스로 걷어찰 수 없다. 나 역시 정신적으로 충분한 준비가 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퇴사자가 당하는 정신적 소모는 생각보다 컸다.
잠에 있어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자서 걱정이었다. 알람을 분 단위로 10개 이상 맞춰 놓고 자는 건 기본이고, 제아무리 마감 기간이어도 도무지 밤은 새울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온갖 악몽에 시달리다 두세시에 벌떡 일어나기가 부지기수였다. 감았다 뜨면 아침이라서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밤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다음날 아침, 잠잠히 생각을 정리해봐도 달라진 건 없었다. 특별히 악재를 만났거나, 경제적·사회적으로 신변에 큰 위협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퇴사 후의 계획, 그걸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 마음먹은 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불안함의 근거를 상쇄해도, 근거 없는 불안함이 남았다.
회사원이 회사라는 집단에서 누리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크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주어진 기간 내에 완수해야 하는 일이 주어지고, 도움을 주거나 받아야 할 동료를 곁에 두고, 퇴근이 늦거나 이르거나 다시 또 출근을 해야 하고…. 그 모든 지겹고도 반복적인 패턴에 자신을 맡기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누리고 있었던 안정감은, 고정적 수입이 보장해준 그것보다 더 크다.
퇴사자의 밤이 정신적 고갈에 허덕이는 시간이었다면, 퇴사자의 아침은 다시 정신을 무장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매일을 퇴사일처럼 시작해야 한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다. 기도를 하든 운동을 하든 아니면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든 정신적으로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그다음은 머니(Money), 경제력.
지난 8년 동안 월급이 끊긴 적 없었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족족 빠져나가 버리긴 했어도, 덕분에 카드로 연명할 수 있었다. 퇴직일이 지나고 약 2주 뒤, 마지막 급여가 입금됐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어떤 수입도 통장에 입금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난 아직 프리랜서가 아니다. 그냥 백수인 셈이다.
퇴직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백수 기간’ 역시 계획 속에 포함될 것이다. 계획에 따라 기간의 길이는 달라진다. 누군가는 일주일, 누군가는 한달, 다른 누군가는 반년,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그 기간 동안 버틸 수 있는 경제력이 필요하다. 밑 빠진 독에 부을 물을 넉넉히 준비하거나 빠진 밑을 메워야 한다. 떠놓은 물을 조금씩 쏟아부으며 몇 달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내일, 새로운 수입이 입금된다. 회사원에서 백수로, 백수에서 프리랜서로 넘어가는 공식적인 날. 내일, 나, 이코노믹, 성공적.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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