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15 19:49
수정 : 2015.04.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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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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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오후 3시. 가장 졸리는 시간. 집중력이 흐려지는 시간. 먹은 점심이 다 소화되고, 슬슬 출출하거나 입이 심심해지는 시간. 바야흐로, 탕비실로 향해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야 할 시간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날이라면, 건물 로비에 있는 도넛 가게나 옆 건물 카페로 나가기도 했다. 메신저로 회사 선배를 꼬드겨 동행하기도 하고, 사내 동료들의 불편을 대신 해결해 드리겠다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커피 셔틀’을 자처해 밖으로 나갈 구실을 만들기도 했다.
회사 옆 건물에는 자주 찾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다. 점심시간만큼 붐비지 않지만, 그 시간에도 항상 꽤 많은 사람들이 있어 놀라곤 했다. 미팅 하는 그룹도 곳곳에 있고, 나와 비슷한 핑계로 ‘땡땡이’ 중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혼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잠깐 숨을 돌리거나, 점심을 거르고 간단히 늦은 식사를 해결하거나, 외근 중에 갑자기 메일을 보내거나 문서 작업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신기한 쪽은, 아예 죽치고 앉아 컴퓨터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얼핏 보기에도 잠깐 쉬었다 가는 분위기는 아니고, 사무실 자리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자기 업무에 열중하는 사람들. 그런 광경을 만날 때마다 궁금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작가? 근처에 취재를 나온 인터넷신문 기자? 누가 봐도 리포트를 쓰는 대학생 나이는 아닌데, 알고 보니 이 카페의 사장? 그땐 몰랐다. 나 역시 그런 의문의 주인공이 될 줄은.
회사를 떠나는 순간 나에게 사무실은 없어졌다. 내 자리도, 회의실도, 복합기도, 탕비실도, 하다못해 아무 때나 가서 쓸 수 있는 화장실도 없어졌다. 아직 그럴싸한 사무실을 갖춘 전문 기업인도 아니고, 그냥 집이 내 사무실이 됐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집에선 통 일이 안됐다. 사무실 특유의 적당한 어수선함, 모두가 함께 일하는 공간이라는 묘한 긴장감, 이 시간과 저 시간 사이에는 어쨌든 일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의무감이 집에는 없었다. 시험 기간을 앞둔 수험생의 주말처럼, 책상 정리를 했다가, 중력의 법칙에 몸을 맡기려 침대에 누웠다가, 손톱 발톱을 정리했다가, 자, 이제 좀 일을 해볼까 싶은 때는 잠이 쏟아졌다. 어쨌든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내겠지만, 집에서 하는 일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나가야 했다. 적당히 어수선하고 묘하게 긴장되며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주는 곳으로.
오후 3시. 대개 카페 구석에서 시간을 보낸다. 점심 미팅을 마치고 온 뒤나, 저녁 스케줄이 있어 시간이 뜬 경우일 때가 많다. 오가는 시간을 버리면서까지 굳이 집중도 안 되는 집으로 들어갈 순 없어서,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서울만큼 카페가 많은 도시는 지구에 없으니, 적당한 장소를 찾는 건 쉬운 일이다. 층고가 높고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 카페일수록 좋고, 2층이 있다면 더 좋다. 콘센트가 없는 몇몇 프랜차이즈 카페는 애초에 피해야 하고, 와이파이가 오픈된 곳이면 베스트다. 너무 죽치고 앉아 버티고 있는 건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실례라고 생각해 나름의 룰도 정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한잔 더 주문하거나 다른 카페로 옮긴다. 절대 억지로 참지 않는다.’
그 시간 카페엔 여전히 비슷한 그룹의 사람들이 오간다. 미팅을 하거나, 늦은 점심을 먹거나, 밀려오는 잠을 깨우러 오거나, 그리고 뭘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있거나. 오후 3시의 카페는 별다를 것 없는 날을 보낸다. 단지 나의 역할만 바뀌어 있을 뿐이다.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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