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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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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처음 어시스턴트를 시작할 때였다. 처음으로 패션 잡지에서 일하는 에디터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생각했다. 에디터는 그야말로 ‘에디터’니까, 높여 부른다면 ‘에디터님’이겠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두가 에디터를 ‘기자님’이라 불렀다. 패션 잡지의 에디터를 에디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대개 업계와 거리가 먼 쪽이다. 에디터 역시 어느 매체의 기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모두가 기자라 부른다. 그러니까 높여 부르게 되면 ‘기자님’이 되는 셈이다. 오랫동안 ‘기자님’으로 불렸다. 처음엔 들을 때마다 좀 오글거렸다. 기자도 아니고 기자‘님’이라니. 직업을 지칭하는 명사 ‘기자’에 높임의 뜻을 부여하는 의존명사 ‘님’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색했지만, 사회적 통념상 대안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애매하고 어색한 호칭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실장님’. ‘실장님’은 패션 업계에서 보편적이고도 상징적인 호칭이다. 포토그래퍼, 패션 스타일리스트,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디자이너 등 ‘기자님’과 어시스턴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크리에이터는 실장님이라 불린다. 회사에서 부여받은 정확한 직책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렇다. 아마도 패션 업계에는, 지구상 그 어떤 집단보다 많은 수의 실장이 존재할 것이다. 촬영장에 언제나 수많은 실장들이 공존한다. 어디선가 갑자기 “실장님!” 소리가 들리면 대여섯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뭔가 음침하고 권위적인 이 호칭이 패션 업계에 자리잡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실장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연구실 따위의 ‘실’자가 붙은 부서의 우두머리’. 지금 패션 잡지의 모든 사진 촬영은 외주 업체에서 진행하지만, 예전엔 패션 잡지사 내부에도 사진실이 있었다. 그 실의 장이 되는 포토그래퍼를 실장이라 불렀고, 그런 관습은 외주 스튜디오와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패션 업계에는 오랫동안 수많은 디자인실이 존재해왔고, 패션 브랜드의 주축이 되는 디자이너들은 모두 실장이라 불렸다. 그렇게 실장은, 패션 업계에 속한 크고 작은 ‘장들’을 높여 부르는 애매하지만 적당한 호칭이 되었다. ‘실’의 유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어시스턴트든 독립만 하면 바로 실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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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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