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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20 19:11 수정 : 2015.05.21 08:42

사진 박태일 제공

[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이제껏 여러 퇴직자를 봐왔다. 가장 행복한 경우는 이직할 직장을 정해둔 채 얼마간의 휴식을 갖기 위한 퇴직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놀면 그만이다. 하지만 독립을 위해, 그리고 그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그만두는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처음엔 누구나 야심차게 사표를 던진다. 그 후 맞닥뜨리는 일상의 여백은, 오랜 회사 생활로 쌓인 독을 빼내고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삼겠다는 단호한 다짐도 있다. 하지만 이내 몹쓸 질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프리랜서 초심자의 심신을 갉아먹는 지독한 병, 이름하여 ‘프리랜서 증후군’이다. 만약 아래의 증상에 해당된다면 프리랜서 증후군 환자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이 무작정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거라면 당장 일을 시작해 마땅하지만, 대부분은 얼마간의 휴식 시간을 준비해둔다. 스스로 준비한 만큼은 그저 쉬면 그만이지만, 몇몇은 그러지 못한다. 쉽게 말해, 도무지 놀지를 못한다. 바빠서 잘 보지 못한 지인들을 만나 얘기를 할수록 점점 불안해진다. 그게 싫어 훌쩍 나들이를 떠나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내내 조바심이 든다. 결국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쉬자. 침대나 소파에 몸을 던져보지만 쉬면 쉴수록 불안해진다. 등을 붙이고 누워 있는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자책,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데도 떨치기 힘든 안달로 가득 찬 안절부절 좌불안석.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은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은 평생 동안 지금뿐일 수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정리해본다. 꽤 많을 것이다. 정 놀기 싫으면 포트폴리오라도 제대로 다시 만들든지.

괜히 아프다

부산했던 정신을 가다듬고 이제 좀 쉬어볼까 싶으니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한다. 오뉴월 감기가 걸린 것도 아닌데 으슬으슬 춥거나 열이 나고, 먹는 것마다 위에서 턱턱 걸린다. 몸이 맥을 못 추니 모든 것에 의욕도 떨어진다. 누군가는 긴장이 풀려서라고, 누군가는 회사에서 쌓인 독소 탓이라고 말한다. 원래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을 수도, 급격한 신변의 변화가 생체 리듬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정신력도 하나의 ‘력’이어서 결국 힘이 필요하다.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퇴사자에게 피티 스튜디오에 지급하는 돈은 아까울 수 있어도, 운동에 할애한 하루 한 시간쯤은 아까워할 필요 없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여기서 비틀거리면 안 된다. 지금 당장 동네 한 바퀴 걷는 것부터 시작한다.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심신의 안정을 찾고 나니 본격적인 근심이 시작된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어쩌지? 프리랜서가 아니라 그냥 ‘프리’가 되면 어쩌지? 이렇게 세상에서 영영 잊혀버리면 어쩌지? 이 증상은 일종의 환각과도 같다. 한번 빠지고 나면 헤어나오기 어렵지만, 깨고 나면 별것 아닌 것. 자신의 덧없음보다 근심의 덧없음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누가 나를 찾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 나선다.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오래 일하는 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업무적으로만 대면했던 사람들과 진짜 대화를 나눠본다. 어딜 가서 일을 따내란 말은 아니다. 대화는 갇힌 생각을 깰 여지를 준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여겼던 것에 대한 검증과 확신을 준다. 당장 바쁜 일이 없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바빠져본다. 결국 다시 바빠야 한다.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노동의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일과 성취로 자신을 증명하기 원하는 인간이라면.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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