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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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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아내가 회사를 그만뒀다. “나, 회사 그만둘까?” 어느 날 아내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어, 그래, 때려치워버려!”라고 하기엔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고, 아내의 봉급이 빠진 상태에서의 가계경제 운용 방안을 깊이 고려해봐야 할 것 같지만, 순간 너무 망설이거나 고심하느라 눈빛이 흔들리게 된다면 아내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지 못하는 차갑고 냉정한 남편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하는 동안 이미 ‘동공 지진’은 벌어진 후일 테지만. 3년 전, 같은 질문을 아내한테 받았다. 발작을 일으키는 동공을 애써 잠재우며 생각했다. 지금 가정의 구성원은 아내와 나 둘뿐이다. 아이는 없다. 함께 쓰는 자동차는 한 대, 할부는 이미 끝났다. 월세는 내지 않지만, 주택자금대출은 이자와 함께 원금분할상환을 시작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쇼핑이나 여행에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빠듯하겠지만, 감당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돈은 문제가 아니라고 믿었다. 그 질문에 답하는 데 고려해야 할 것은 돈 말고도 더 있었다.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삶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가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직업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쓰인다는 데는 의견이 갈릴 것이다. 직업이 주는 혜택이 돈뿐인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직업은 자신을 대변하는 커다란 울타리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직업이 없이도 사는 데 필요한 돈이 충분한 상태는 누구라도 원하는 꿈같은 일이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직업의 부재가 낳는 폐해가 경제적 결핍뿐인 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질문을 받은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나, 회사 그만둘까?” 아내가 던진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중엔 경제적인 것도, 정서적인 것도 있었다. 소속된 회사에서 감당하고 있는 업무, 경력, 실질적 기여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받고 있는지. 자신이 쳐내는 일의 양이, 그것에 들이는 시간이 과연 적당한 수준인지. 사는 데 꼭 필요하다고 믿는 정도의 휴식이 보장되는지. 보통은 보장이 안 되겠지만, 그걸 감내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혹은 더 버틸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을 결정한 상사·오너에 대한 존경 또는 불만, 그외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새로운 회사로 옮기거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회사를 떠나 혼자 일을 시작해볼 능력과 마음이 있는지. 다른 거 상관없고, 일단 쉬고 싶은지. 아예 가정주부로 전업을 하고 싶은지. 그렇다고 해도, 진짜 그래도 되는지. 과연 괜찮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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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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