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7.29 19:00 수정 : 2015.07.30 10:31

사진 박태일 제공

[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별안간 직원이 생겼다. 덕분에 모든 면에서 나아졌지만, 어색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스케줄링. 오전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새로 채용한 어시스턴트였다. “선배, 어디세요?” “응? 지금 집인데, 왜?” “저 지금 사무실 앞에 와 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요.” 그렇다. 어젯밤 촬영 제품을 반납하기 위해, 오전 일찍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난 어젯밤 촬영이 늦게 끝나 넘겨야 했던 원고를 미처 다 쓰지 못했고, 오전 중에 그걸 마무리하고 반납하러 가야겠다, 혼자 결론 내리고 있었다. 직원이 있다는 새로운 ‘시스템’과는 상관없이, 평소 행동양식에 따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직원에게 일률적인 출퇴근 시간은 없다. 왜냐면 유동적인 업무 특성상 나조차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무는 나의 업무에 따라 결정되고, 그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 곧 출근 시간이기 때문에. 혼자 일할 때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일을 해야 할 때 일을 시작하면 되고, 사무실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사무실로 나가면 되고, 놀아도 될 때는 언제든 그냥 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한 명이 더 있다. 그의 행동양식을 좌지우지해줘야 한다. 일해야 할 때는 일하라, 놀아도 될 때는 놀아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선배, 혹시 내일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요?” “어, 맞다. 잠깐만.” “모레는 촬영장에 몇 시까지 가 있을까요?” “어, 그래그래, 잠깐만…” 누군가의 업무의 시작과 끝을 결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큰일인 줄은 몰랐다. 직원의 업무 형태, 회사로 따지면 내규에 해당하는 것들까지 처음부터 혼자 세워가는 중이다. 참으로 어색하게도.

식사. 이제껏 당기는 대로 먹었다. 식사 시간 같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12시가 됐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필요는 없었다. 대충 빵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귀찮으면 거르기도 했다. 어떤 때는 나 혼자 한 끼인데 싶어 값비싼 진수성찬으로 사치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끼니를 챙겨야 할 사람이 생겼다. 나 배 안 고프다고 멋대로 굶길 수 없는 사람이 생겼다. 종종 눈치를 보기도 한다. ‘슬슬 밥 먹을 때가 됐나?’ ‘지금 배고픈데 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쯤에서 내가 밥 먹으러 가자, 해줘야겠지?’ 그래서 물어본다. “밥 먹어야지. 뭐 먹고 싶어?” “저요? 아무거나 좋습니다.” 직원이 생긴다고 오늘 뭘 먹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나 역시 ‘언제나 먹고 싶은 게 정확히 있는’ 직원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동기부여. 처음 누군가의 어시스턴트였던 때를 기억한다. 첫 상사는 스타일리스트였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잡지사 에디터였다. 그 사이의 간극은 서로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는 같이 일할 직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만둘 때까지, 자신과 다른 방향을 향하는 나를 많이 배려하고 응원해줬던 게 기억에 남는다.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직원의 모든 것은 나로부터 결정된다. 그에게 상사는 나, 선배도 나, 팀장도 나, 회사도 나인 셈이다. 그의 업무, 성과, 그걸 판단하는 잣대, 그로 인한 동기부여, 그 모든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어떤 성취까지…. 그러기 위해선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중도를 찾아 합의를 이뤄야 했다.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 “선배가 하는 거라면 뭐든 다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최대한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오호, 그래. 그렇다면 정말로 최대한 많은 일을 시켜볼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최대한. 입가에 미소가 흐르자, 그도 따라 웃었다. 그 의미는 알아채지 못했을 테지만.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