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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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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뭐냐고 묻는다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휴가 다녀오셨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휴가 못 갔다. 그래서 웬만하면 먼저 묻는다. “휴가 다녀오셨어요?” 몇 주 전만 해도 “아뇨, 아직이요”라는 대답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요즘엔 대부분 “네, 갔다 왔어요”라고 답한다. 휴가철의 정점에 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십분이 멀다 하고 바닷가나 수영장 사진이 올라온다. 회사를 관두기 전엔 상상했다. 아마도 반년 뒤엔(바로 지금쯤엔) 하와이에 있을 거야. 모던 호놀룰루 풀사이드에 앉아 감자튀김을 주문할 수 있겠지. 하와이는 너무 과한가? 발리? 방콕? 애월? 회사를 관두면 절로 태평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없는 바람은 아니었다. 시간을 더 마음대로 쓸 수 있을 테니, 마음대로까진 아니더라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테니, 적기에 적소로 휴가를 떠나는 것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적어도 회사에 매인 몸이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더. 아직 ‘매인 몸’일 때 함께 출장을 떠난 한 선배가 말했다. 한번 회사를 그만둔 적 있었고, 한참을 여행하다 프리랜서로 일했고, 다시 회사원이 된 선배였다. “자기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해. 한달에 얼마를 일하는 데 쓸지, 얼마를 여유로 남겨둘지. 그걸 정말 분명하게 정해야 해. 그만두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그렇지 않기 쉽거든.” 그땐 당연히 그래야겠지 하고 받아넘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여유로 남기는 걸 할 줄 몰랐다. 회사원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았고, 더 잘하고 싶었다. 그걸 잊고 지내는 건 기회에 대한 방임으로 여겼다. 기어이 멀고 길게 휴가를 가고 말겠다는 허망한 다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주일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2박3일 출장만 가도 뭔가 불안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한국 시간으로 오전 열시쯤이 되면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무실에 별일 없죠?” “어, 아무 일도 없어. 제발 신경 꺼.” 불안함을 느끼는 회사원으로 살아온 게 나뿐인 건 아닐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말 그대로 ‘신경 끄고’ 휴가를 다녀오는 회사원이 많지만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서울에는,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그래서 회사를 관두면서 가장 먼저 하려고 한 건, 여행을 떠나는 일이었다. 어디든 아름다운 물가에 앉아 더 아름다운 맥주를 들이켤 거야. 의지는 김빠진 맥주 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는 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았기에. 지금은 후회하지만, 그 일 안 해도 뭔 큰일이 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땐 왠지 꼭 그럴 것만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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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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