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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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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새 사무실 주소를, 다니던 직장의 동료에게 말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 우리 사무실이랑 진짜 가깝네?” 말 그대로다. 지금 사무실은 이전 회사와 정말 가깝다.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이제는 ‘너무’를 긍정적 의미로도 쓸 수 있으니 오해는 금물이다.) 매일 아침, 항상 가던 데를 가는 듯한 희한하게 익숙한 기분이 든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맞닿는 곳,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다른 곳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왕복 10차선 도로긴 하지만. 이전 회사 건물은 주차장이 협소해 사원들은 주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월주차를 찾아 이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주차장은 회사 건물 바로 옆 아파트 단지였다. 그보다 가까운 주차장은 있을 수 없는데다 ‘최저가’였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지 여섯달 만에 자리를 배정받은 게 기억난다. 새 사무실엔 주차 공간이 없어, 월주차를 끊지 않고 그대로 이어 쓰고 있다.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가는 길엔 언제나 이전 회사 정문이 있다. 굳이 거길 피해 간다 해도 소용없다. 다른 길엔 후문이 있기 때문에. 잠깐 담배 피우러 나온 선배, 1층 로비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동기, 황급히 택시에서 내려 헐레벌떡 회전문으로 향하는, 이미 지각이 확정된 후배까지. 이 중 한 명을 만나는 건 예삿일이고, 셋을 동시에 만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동선도 너무 비슷하다. 점심시간, 주변에 갈 만한 식당도 빤하고, 미팅하러 카페에 가거나, A4 용지를 사러 가거나, 우체국이나 은행에 가거나, 적어도 한 명 이상은 꼭 만난다. 모든 게 너무 익숙해서, ‘내가 회사를 관둔 게 맞긴 하겠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전 직장의 위치를 아는 누군가를 만나면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어머, 너무 가까운 거 아니에요? 괜찮으시겠어요?” 농담과 진담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 쓰인 ‘너무’의 의미가 통상적으로 쓰인 부정적 의미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전 직장과 지금 사무실이 가깝다는 게 꼭 안 좋은 걸까? 뭐, 서로 ‘웬수’가 돼서 나온 것도 아닌데? 사회성이 떨어지는 내겐 오히려 좋은 일이 되곤 한다. 굳이 인사를 하러 다니지 않아도, 반가운 얼굴을 심심찮게 만나니까.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들었던 질문을 반복해 들어야 한다는 것. “요즘 어떻게 지내?” “요즘 바쁘다며?” “사무실 열었어? 언제 초대할 거야?” 맥락은 거의 똑같은 대여섯가지 질문을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듣는다. “아, 그냥 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하.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대답은 항상 같고, 특별할 것도 없다. 기계식으로, 건성건성 답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같은 대답을 반복할 때마다 생각한다. 뭔가 더 특별한 무언가가 되어 있어야 하나? 차도 바꾸고, 이사도 가고, 아주 번지르르한 차림으로 마주쳐야 하나? 유명한 누군가와, 어마어마한 회사와 일한다고 해야 하나? 이어지는 대답을 듣고 나면 잡념은 사그라든다. “야, 그래도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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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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