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9.09 18:58 수정 : 2015.09.10 10:55

사진 박태일 제공

[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출근시간,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숨막히고 먹먹한 단어 중 하나. 일요일 밤마다 월요일 출근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시한폭탄을 발견한 <다이하드> 존 매클레인과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며, 그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게 수월한 사람만큼 기이한 별종은 없을 것이다. 지구의 모든 회사원의 숙명이자 굴레인 출근시간,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으로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첫 출근을 기억한다. 막 출근한 안내 데스크 직원이 위치를 알려준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멍하니 빈 사무실을 한참 바라보았다. 적어도 그날은,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있어야 한다는 게 당연한 듯 여겨졌다. 첫날이니까, 누구보다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야 할 테니까. 그리고 당분간은 그래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때쯤 하나둘 사무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홉시 반이 넘었을 것이다. 꽤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사무실 문을 연 내가 무안해질 만큼. 패션 매거진 에디터의 출근시간이란 과연 이런 걸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앞으로 몇시에 출근하면 될까? 아홉시? 아홉시 반?

“앞으론 나 오기 전에만 오면 돼.” 생애 첫 ‘보스’가 말했다. 간결한 듯하지만 굉장히 애매한 대답이었다. 시계 위의 모든 숫자보다 우선하는 ‘나 오기 전’이라는 순간은 과연 어디쯤에 있는 걸까. 그게 어디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일정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것. ‘나 오기 전’이 생각보다 빨랐던 날, 새파란 신입이 겁도 없이 보스보다 늦었던 날, 그야말로 ‘박살’이 난 후로는 단 한번도 늦은 적 없었다. 적절한 출근시간 같은 건 필요없었다. 그냥 일찌감치 나오면 그만이었다. 아마도 여덟시 반, 그 정도면 출근해서 한숨 돌리고, 화분에 물 주고, 조간신문 찾아다 책상에 올려 드리는 것까지 얼추 맞았다. 그 시간에 출근하는 패션 매거진 에디터는 아마도 서울에서 유일무이했을 것이다.

다음 직장에서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9시 출근이라는 기준이 있었지만, 잘잘못은 보스의 출근 전과 후로 갈렸다. 아홉시에 왔지만 보스의 출근 후면 지각, 열시에 와도 보스의 출근 전이면 지각이 아닌 게 됐다. 그렇게 6년을 보냈고, 어느새 무형의 출근시간에 아주 익숙해졌다. 내일의 적정 출근시간을 그날의 분위기로 가늠할 줄도 알게 되고, 그래도 아리송할 땐 아예 비약적으로 일찍 출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 자유로운 것은 다른 말이다. 적정 출근시간이 되면 체내시계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게 이르든 늦든 온몸에 긴장을 주는 건 똑같았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야말로 출근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편인 듯 보였다.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지금은 어떨까?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나 오롯이 내 시간을 자유로이 활용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때보다 명확한 출근시간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일말의 양심과 욕심을 더해 오전 열시에 사무실 문을 연다. 귀한 자유가 허망한 방종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마련한 나만의 기준치다. 타인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어기기 쉬울 것 같지만, 지키지 못했을 때의 죄책감은 몇백배 크다. 어쨌든 인생의 출근시간을 정하고 따르는 삶을 사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퇴근시간은 몇시더라?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