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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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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출근시간,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숨막히고 먹먹한 단어 중 하나. 일요일 밤마다 월요일 출근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시한폭탄을 발견한 <다이하드> 존 매클레인과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며, 그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게 수월한 사람만큼 기이한 별종은 없을 것이다. 지구의 모든 회사원의 숙명이자 굴레인 출근시간,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으로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첫 출근을 기억한다. 막 출근한 안내 데스크 직원이 위치를 알려준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멍하니 빈 사무실을 한참 바라보았다. 적어도 그날은,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있어야 한다는 게 당연한 듯 여겨졌다. 첫날이니까, 누구보다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야 할 테니까. 그리고 당분간은 그래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때쯤 하나둘 사무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홉시 반이 넘었을 것이다. 꽤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사무실 문을 연 내가 무안해질 만큼. 패션 매거진 에디터의 출근시간이란 과연 이런 걸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앞으로 몇시에 출근하면 될까? 아홉시? 아홉시 반? “앞으론 나 오기 전에만 오면 돼.” 생애 첫 ‘보스’가 말했다. 간결한 듯하지만 굉장히 애매한 대답이었다. 시계 위의 모든 숫자보다 우선하는 ‘나 오기 전’이라는 순간은 과연 어디쯤에 있는 걸까. 그게 어디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일정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것. ‘나 오기 전’이 생각보다 빨랐던 날, 새파란 신입이 겁도 없이 보스보다 늦었던 날, 그야말로 ‘박살’이 난 후로는 단 한번도 늦은 적 없었다. 적절한 출근시간 같은 건 필요없었다. 그냥 일찌감치 나오면 그만이었다. 아마도 여덟시 반, 그 정도면 출근해서 한숨 돌리고, 화분에 물 주고, 조간신문 찾아다 책상에 올려 드리는 것까지 얼추 맞았다. 그 시간에 출근하는 패션 매거진 에디터는 아마도 서울에서 유일무이했을 것이다. 다음 직장에서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9시 출근이라는 기준이 있었지만, 잘잘못은 보스의 출근 전과 후로 갈렸다. 아홉시에 왔지만 보스의 출근 후면 지각, 열시에 와도 보스의 출근 전이면 지각이 아닌 게 됐다. 그렇게 6년을 보냈고, 어느새 무형의 출근시간에 아주 익숙해졌다. 내일의 적정 출근시간을 그날의 분위기로 가늠할 줄도 알게 되고, 그래도 아리송할 땐 아예 비약적으로 일찍 출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 자유로운 것은 다른 말이다. 적정 출근시간이 되면 체내시계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게 이르든 늦든 온몸에 긴장을 주는 건 똑같았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야말로 출근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편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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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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