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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30 19:02 수정 : 2015.10.01 10:55

사진 박태일 제공

[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그러니까 지난 목요일, 이런 문자를 받았다. “이제 연재 안 하세요? 오늘 안 올라오던데.” “추석 연휴라서 한주 거르고 하기로 했어요.” “아니, 왜요! 추석이 얼마나 좋은 소잰데. ‘직장인에게 연휴란’이라거나, ‘명절에 출근한다는 것은’ 같은 글 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차마 추석에 출근하시냐는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다. “고향 내려가봐야 차 막히고 고생이죠, 힘내세요” 정도로 대화는 적당히 마무리됐다.

직장인에게 명절은 뭘까? 해가 바뀌면 그해의 공휴일 리스트가 검색 순위 1위에 오른다. 그중에서도 설과 추석이 무슨 요일인지, 그래서 쉬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다. 그걸 본 누군가는 당장 휴양지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끊기도 하고, 지치고 힘들 때도 꾹 참고 아끼고 아낀 연차를 붙여 쓰기만을 학수고대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홀로 세워둔 계획을 어떻게 실현할지, 회사의 모든 상황과 정황이 그 계획을 실현가능하게 돌아가줄 것인지를 고민한다. 직장인에게 명절은 원대한 꿈이자, 힘겨운 삶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다. 어쨌든, 기필코 쉬어야만 하는 날이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하지만 마지막날이 되면 어떨까?

이번 추석은 회사를 그만두고 맞는 두번째 명절이었다. 지난 설에는 출장을 다녀왔으니, 이번에야말로 정말 간만에 연휴 내내 푹 쉬었다. 마감이 없는 세상에서, 정말 고요하고 평온한 명절을 보냈다. 아무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어디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다, 드디어 맞은 명절 마지막날. 실컷 먹다 남은 전과 송편, 갈비찜과 약과와 함께 마트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른 미국산 아이피에이(IPA) 맥주를 들이켜며 생각했다. ‘이게 명절이구나.’ 일을 시작하고 마감이다 뭐다 하며 한번도 제대로 쉰 적 없었던 명절, 약 10년 만에 새삼 명절의 가치를 되새기는 추석이었다.

침대에 기대 누워 에스엔에스(SNS)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타임라인 위로 서서히 탄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 오늘이 연휴 마지막날이라고?’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좌절들이 툭툭 치고 올라왔다. 탄식과 좌절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난 왜 여유로울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 기분은 뭘까?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이 내일이면 거짓말처럼 출근을 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왜 평온할까?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회사를 박차고 나와도 여전히 똑같이 ‘일’을 한다. 딱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오롯이 나를 위해 한다는 마음일 것이다. 왜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왜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 고생을’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까? 어쨌든, 명절 마지막날 평온한 마음으로(너무 평온해 원고 마감이 다가온 줄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도 그 마음을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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