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0.14 19:09 수정 : 2015.10.15 10:15

사진 박태일 제공

[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청소 아주머니

잡지사 사무실에는 온갖 종이들이 곳곳에 쌓여 있다. 그중엔 소중한 서적과 중요한 자료들, 그리고 필요없는 폐지들도 있다. 마감이 한창일 때, 작성한 기사와 화보 페이지를 여러번 인쇄해 재차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다 보면 쓰잘데기 없는 교정지들이 쌓여 간다. 마감이 끝나고 나면 버릴 종이들을 쓰레기통 옆에 쌓아둔다. 그러면 그걸 청소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가 치워주시는 식이다. 그런데 가끔 아주머니가 헷갈리실 경우도 있다. 이게 버리라고 둔 건지, 아니면 보관 중인 자료들인지. 혹은 의욕이 과하실 때도 있다. 그러다 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말끔하게 치워버리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출근해 보니, 쓰레기와 함께 중요한 책이나 자료가 함께 사라진 걸 발견하기도 한다. “오, 마이 갓. 아주머니, 여기 있는 거 다 버리셨어요, 설마?” “네에, 잘했쥬? 하도 정신이 없어가지구 내가 싹 치워버렸지이.”

언젠가는 난데없이 수목원으로 변한 화장실을 보고 놀란 경우도 있다. 세면대 위는 물론이고, 창가 난간, 때로는 소변기 근처 바닥까지 온갖 화분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사무실 곳곳에 버려진 화분들을 수집해 정성껏 가꾼 청소 아주머니만의 ‘원더랜드’. “이거, 다 죽어가는 거를 내가 간신히 살려 놓은 거야. 이 봐봐요, 아주 생생하쥬?” “아, 네에.” 자랑스러워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이 ‘원더랜드’가 사무실 화장실에 어울리는 것일까, 과연 아름다운 풍경일까 고민했다. 아름답지 못해 귀엽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며칠 전, 벌금을 물었다. 사무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나가봤더니, 웬 아저씨 둘이서 내다버린 쓰레기 봉투를 뒤적거리며 위반 확인서를 쓰고 있었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했다는 명목이었다. “여기 전화해서 2만원 감경받으세요.” 퍽이나 고마운 조언이었다. 뭘 그렇게 잘못 버렸나 뒤져보니, 콜라 캔, 배달 용기와 함께 말라 죽은 화분이 하나 나왔다. 그걸 보니 문득 화장실 속 ‘원더랜드’에서 해맑게 웃던 청소 아주머니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감사합니다, 한마디 못 드리고 회사를 나왔네.

무서운 대리님

어떤 회사든 관리팀(혹은 회계팀)에는 ‘무서운 대리님’이 있을 것이다. 그 위엔 물론 ‘깐깐한 부장님’도 계실 테지만, 실질적 공포는 오롯이 대리님의 몫이다. 정산 마지막날 아침, 칼같이 단체 메일이 도착한다. ‘오늘은 정산 마감일입니다. 정산 내역 16시까지 입력하셔야 합니다. 세금계산서는 17시까지 제 자리로 가져다 주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싸늘한 한마디. ‘그 후로는 처리가 불가합니다.’ 이 ‘대리님’은 우리만 아는 게 아니다. 거래처라면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다. “그분 있잖아요. 아우, 말 무섭게 하시는 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왜 꼭 그래야 할까? 왜 그분은 꼭 우릴 압박하고 닦달할까?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지난 일요일 밤, 미뤄둔 정산을 했다. 세금계산서를 미처 못 끊은 곳, 끊었으나 결제가 안 된 곳, 오히려 결제를 해줘야 하는 곳….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머리가 터지기 직전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언제 결제가 이뤄질까요?’ 문자를 쓰다, 문득 ‘무서운 대리님’ 생각이 났다. 그분이 우리 직원이라면 참 좋겠다, 바라보기도 했다. 예쁜 물조리개 하나 사 드릴걸. 세금계산서에 ‘마이구미’ 하나라도 얹어 드릴걸. 참 좋았을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