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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8 19:29 수정 : 2015.10.29 10:07

사진 박태일 제공

[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도쿄에 왔다. 처음 본 사람들은 날 도쿄에서 여러 번 전 재산을 탕진했을 법한 사람으로 보지만, 사실 내게 도쿄는 의외로 익숙지 않은 도시다. 약 5년 전 2박3일 출장으로 잠시 다녀온 게 전부다. 하라주쿠 냄새만 잠깐 맡아봤달까? 아무튼 갑작스럽게 도쿄에 다시 오게 됐다. 긴박한 스케줄이었지만 어려울 게 없었다. 티켓 예약부터 호텔과 동선 결정까지, 모든 것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호텔 창문 밖 도쿄타워를 보며 생각했다. ‘호텔 하난 기가 막히게 잡았네.’ 가야 할 곳과 가고 싶은 곳이 적절히 섞인 동선,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하는 숙소의 입지. 이 모든 것은 출발 결정부터 이륙까지, 약 6시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대학교에서 모두가 배낭여행을 떠날 때마다 홀로 서울을 지켰다. 해외여행이라는 것 자체를 별로 가본 적 없었다. 스스로 비행기 티켓을 사고 다른 나라 어딘가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는 건 딴 나라 얘기 같았다. 취업을 하고, 피처팀에서 에디터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어쩌다 출장을 가도 담당자들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줬다. 옷이랑 여권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패션 에디터로 전향하면서부터 생겼다. 1년에 두번, 패션위크 참관을 위해 다른 대륙으로 떠나야 했다. 비행기 예약은 물론,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에 관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했다. 그것도 편집장님을 모시고.

파리를 싫어한다. 왜냐면, 그렇게 떠난 첫 출장이 파리였기 때문에. 대체 무슨 정신으로 거길 갔는지 모르겠다. 비행기 예약에 서툴러 몇 번 다시 예약을 하기도 했고, 콜센터 상담원을 기다리다 항공사 로고 송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물론 파리에 가서도 무슨 정신으로 다녔는지 모르겠다.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 식당 테이블을 전화로 외계어로 예약하고, 편집장님 모시고 지하철을 탔는데 출구를 못 찾아 진땀을 빼기도 했다. 셋째 날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처음 에펠탑을 봤다. ‘아, 내가 파리에 있긴 하구나.’ 시차 때문에 몽롱한 정신을 놔버릴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은 쥐뿔도 모르는 내 손에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8년을 보냈다. 그동안 호텔 예약을 실수로 해 내 돈을 날린 적도, 비자 때문에 입국도 못 해보고 집으로 갈 뻔한 적도 있었다. 모든 책임을 지고 한국에 돌아가면 조용히 사표를 써야겠다 다짐해보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보내다 편집장님과 함께한 출장이 다섯번쯤 됐을 때, 그로부터 이런 다짐을 듣기도 했다. “앞으로 출장은 계속 너랑 가야겠다.” 누군가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일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은 말’이었다.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여행을 이끄는 사람은 꽤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한다. 기술적이고 지능적이어야 하고, 꽤 감성적으로 민감하기도 해야 한다. 모든 것에 효율과 민첩함이 배어 있어야 하고, 함께하는 모든 사람의 기분과 요구를 앞서 헤아리고 일정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빡센’ 출장을 통해 그 모든 여행의 기술을 본능만큼 익숙하게 익힐 수 있었다는 건 직장인으로서 누린 의외의 혜택이었다. 모든 경험은 어떻게든 인생을 더 이롭게 만든다. 회사에서 겪는 모든 ‘하드 타임’도 마찬가지다. 인생이란 시간에서 나쁜 것은 언제든 버릴 수 있고, 좋은 것은 얼마든지 남겨둘 수 있기 때문에.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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