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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태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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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인사에 인색하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을 모른 척 지나치는 정도는 아니고, 살갑게 사람을 맞이하거나, 자주 안부를 묻지 않는 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잘 지내?”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이전 직장의 선배였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네, 그럼요.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아냐, 다 바쁜데, 뭐.” 물론 선배의 전화는 ‘용건’이 있어서였다. 순수한 ‘안부’ 전화는 아니었으나, 나라고 용건이 생기기 전에 안부를 먼저 물었을까. 용건이든 안부든 먼저 연락을 한 건 선배의 몫이었다. 카페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벌인 여러 일 중 하나다. 준비 중인 카페 뒤편 방을 사무실로 쓰고 있는데, 그 공간 덕분에 겸사겸사 지인들의 문의가 들어오곤 한다. 취재를 하고 싶다거나, 카페를 화보 촬영 장소로 쓰고 싶다거나 하는 식이다. 선배의 연락도 비슷한 이유 덕분이었다. “혹시 내일 오전에 시간 괜찮아? 진행하는 패션 제품 화보가 있는데, 거기 가서 촬영해도 될까? 오랜만에 인사도 할 겸.” “네네, 그럼요. 오세요, 오세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 직장에 인사를 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 거의 일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난 추석 때 야심차게 맛난 걸 싸 들고 가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졌다. ‘원래 명절에 맞춰 가면 오히려 정신없어, 살짝 비켜가야 기억에 잘 남지.’ 누군가의 충고를 핑계 삼기도 했다. 핑계는 핑계일 뿐, 잣대로 삼을 만한 충고인 건 아니다. 일단, 인사의 목적이 틀렸다. 기억에 남기기 위한 인사였다면, 진작에 가야 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을 알리기 위해서, 뭐가 됐든 어쨌든 잘 봐주십사 하기 위해서였다면, 진작에 가야 했을 것이다. 출장길에 사 들고 온, 한국에선 도무지 살 수 없는 희귀한 물건, 혹은 강남의 어떤 유명한 푸드코트에서 파는 ‘핫’한 먹거리들을 양손에 가득 들고. 하다못해 홍삼 박스, 고품격 명품 나주배라도 이고 지고. 적어도 내 인사는 그런 게 아니었다. ‘용건’은 그야말로 핑계가 되어야 했다. 회사를 떠나고, 오만가지 충고를 들었다. ‘사회인’으로서, 심지어 회사라는 그늘 없이 혈혈단신으로 승부해야 할 입장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의뢰한 일을 통해서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마땅히 해야 할 보편적인 ‘사회생활’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누굴 만나도 그렇게, 어디를 가도 요렇게.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모두가 열띤 강연을 벌이는 성공한 자기계발서의 저자 같은 엄숙한 표정이 되어, 건너편에 앉은 나를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미소로 답하며 생각한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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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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