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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5 20:25 수정 : 2015.11.26 10:30

사진 박태일 제공

[매거진 esc] 박태일의 회사를 관뒀어

생애 첫 ‘워크숍’을 기억한다. 춘천 어딘가의 리조트, 이동수단은 역시 관광버스. 패션잡지사에 소속된 패션에디터로서의 ‘패셔너블함’을 유지하면서도, 체육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편안한 룩을 심사숙고했다. 물론, 장기자랑도 준비돼 있었다. 경력사원이긴 했지만 결국 ‘신규 입사자’라서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날 밤 연습을 하기 위해 함께 팀을 이룬 남자 후배와 단둘이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곡명은 소녀시대의 ‘지’(Gee), 그걸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한 옥타브 낮춰 부르는 것으로 명분과 실리를 고루 취하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명분은 출전, 실리는 편히 가는 것. 입상은 바라지 않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이제 남은 건 회식이었다. 빨리 마시고 빨리 끝내는 게 목표였지만, 광고팀 ‘에이스’가 게임을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야말로 날이 새도록, 누군가는 옷장에서 잠든 채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은 즐거웠던 추억인 양 쓰고 있지만, 그땐 정말 싫었다. 체육대회와 장기자랑은 물론이고, 워크숍이라는 것 자체가 싫었다. 조별로 모여 하나 마나 한 얘기를 나눠야 하거나, 비장한 마음으로 밤에 마실 술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 것도.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회사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하지만 그땐 몰랐다. 스스로 워크숍을 계획해 식솔들을 이끌고 떠나게 될 줄은.

지난 주말, 또다른 워크숍을 다녀왔다. 주도한 건 나였고, 따라온 건 내 직원들이었다. 함께 일하는 인원이 늘기도 했고, 더 늦기 전에 의기투합해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무슨 무슨 회사에 비할 바 안 될 단출한 규모, 관광버스 따위 필요 없이 적당한 에스유브이(SUV) 한 대면 충분한 인원이었다. 서로가 원하는 곳으로 워크숍 장소를 정해, 모두의 취향을 고루 반영한 걸 먹었다. 일정도 마찬가지, 회식도 마찬가지. 마시고 싶은 자는 마시고 원치 않는 자는 잔에 사이다를 채웠다. 술을 거부한 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페널티’는 운전이었다. 어쨌든 모두가 행복한 쪽으로 결론을 내려 노력했다. 과연 그럴지 걱정하거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이보다 인원이 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가능한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모두가 행복한 결론이란 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반대해도 반대라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워크숍 자체가 너무 싫을 수도 있겠지. 물론 지금도 이미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회사를 관둔 나는 또 하나의 회사가 됐다. 물론 하는 일이나 규모는, 관두고 난 직후 홀로 일할 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진 않다. 워크숍이라는 걸 갈 정도로 커지긴 했지만, 앞으로 더 커질 수도, 다시 혼자가 될 수도 있다. 회사는 회사다. 매입과 매출, 비용과 수입, 그 모든 것의 상관관계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기와는 상관없이 ‘회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회사를 나온 자, 모두가 회사다. 회사가 되어 새삼 회사의 일원이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회사에 대해 품었던 마음과 지금 함께 일하는 직원의 마음을 나란히 두고 견주어보기도 했다. 이쯤에선 누구라도 그렇듯이, 여태껏 만난 적 없는 이상적인 회사를 꿈꿔보기도 했다. 지금은 어디쯤 와 있나, 점검해보기도 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적어도, 지난 주말에 찍은 단체사진 속에선. <끝>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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