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22 10:28
수정 : 2015.06.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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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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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현의 MLB 리포트
끝부분 안쪽 파낸 ‘컵트 배트’
손잡이는 가늘고 무게는 865g
한국에선 890g짜리 썼다네요
이번에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강정호(28)가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고 있는 배트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야구를 나름의 시간 동안 지켜봤던 입장으로서 새삼 느낀 점이 있었던 일화이어서 소개합니다만 독자분들께서는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타자들에게 거의 습관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배트의 길이와 무게 입니다. 선수들은 각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이와 무게의 배트를 사용합니다. 배트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노브라고 불리는 손잡이 아래 부분의 모습도 제각기 다르고 손잡이 부분이나 타격하는 부분(이 부분은 배럴이라고 합니다)의 굵기가 선수의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커프트 배트라고 해서 배트 끝의 안쪽을 파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규칙을 보면 배트의 무게에 대한 제한은 없습니다. 전체 길이(42인치, 106.7㎝ 이하)와 손잡이 부분의 길이(18인치, 45.7㎝), 굵은 부분의 직경(2.61인치, 6.63㎝ 이하)가 규정 되어 있을 뿐 입니다. 커프트 배트의 경우 안쪽으로 판 부분의 깊이(1.25인치, 3.18㎝ ), 직경(1-2인치, 2.54㎝-5.08㎝)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42인치 이내의 길이라면 얼만큼 무거운 것을 사용하던지, 아니면 얼만큼 가벼운 것을 사용하던지 선수의 자유라는 의미 입니다.
강정호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원정경기에서 홈런을 친 다음 날이던 지난 5월30일 배트의 길이와 무게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강정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글쎄요”라고 하더니 “이게 지금 몇 그램이지?”하고 곁에 있던 통역 김휘경 씨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김휘경 씨가 배트를 들고 구단 장비 담당에게 배트 노브 쪽에 새겨져 있는 숫자 중 어느 것이 무게인지 확인 한 다음 “30.5온스, 약 865 그램”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강정호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생각 보다 가볍네. 한국에서는 890그램 짜리 사용했는데.”
잠시 배트를 들고 자리를 떴던 김휘경 씨가 돌아왔습니다. “밸런스를 맞추려고 규정에 맞게 배트 끝 안 쪽을 파내 (커프트 배트)려다 보니 중량이 가벼워졌다고 하는데요.” 그 사이 배트 제조사와 통화를 해서 이유를 알아냈던 모양입니다.
강정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손잡이 부분이 가는 배트를 사용합니다. 공을 때리는 부분의 직경은 그대로이고 손잡이 부분이 얇아지기만 하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스윙 할 때 필요 이상의 원심력을 느끼지 않도록 커프트 배트를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무게도 덜 나가게 됐다는 의미 입니다.
한국에서 사용했던 배트와 무게 차이가 많기는 했지만 “강정호 선수는 배트의 밸런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강정호의 대답입니다. “그렇죠.” 공연한 질문에 통역 김휘경 씨만 바쁘게 만들어 놓았던 셈 입니다. 대신 중요한 것(밸런스)만 문제 없으면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강정호의 대범한 성격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기는 했습니다.
강정호가 홈으로 돌아온 뒤 클럽하우스에 평소 사용하던 것과 다른 회사제품의 배트 두 자루가 클럽하우스에 있었습니다. 서부 원정 중에 해당회사 직원이 강정호를 방문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당시 강정호는 “현재 다른 배트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답했음에도 어느 새 강정호의 자리에 놓여 있던 배트의 무게와 길이(33.5인치, 85㎝)를 확인하고 같은 길이와 무게로 배트를 만들어 보낸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손잡이 부분의 모양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지 강정호가 평소 사용하는 것 만큼 가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저 배트는 사용하지 않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정호가 배트를 받은 다음 날 자리에 보니 전날 두 자루였던 배트가 한 자루 밖에 놓여있지 않았습니다. 한 자루가 보이지 않는다고 묻자 강정호가 “타격 훈련할 때 썼어요”라고 답했습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야구는 아니지만 걸핏하면 “채에 문제가 있어”라고 하시는 주말 골퍼 여러분들도 생각 좀 해보시길….
박승현 로스앤젤레스/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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