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14 10:58
수정 : 2015.10.14 11:02
메이저리그 디비전시리즈가 한창입니다. 누군가는 또 영웅이 되고 전설로 남게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가장 주목 받는 선수는 엘에이(LA) 다저스 내야수 체이스 어틀리입니다.
어틀리는 지난 11일(한국시각)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서 상대 유격수 루벤 테하다의 오른쪽 종아리뼈가 부러지게 하는 부상을 입혔습니다. 1루 주자였던 어틀리는 병살 플레이를 시도하던 테하다를 향해 슬라이딩하면서 충돌했습니다.
테하다의 골절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졌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이튿날 어틀리가 야구규칙을 위반했다면서 2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어틀리가 재심의를 요구, 이를 위해 20일 청문 절차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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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가 9월18일(한국시각)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의 안방경기에서 1회초 수비 때 병살을 시도하다 크리스 코글런의 거친 슬라이딩에 왼쪽 무릎을 다친 뒤 괴로워하고 있다. 피츠버그/유에스에이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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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슬라이딩에 대해 새삼 논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충격적인 일이 수많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포스트시즌에서 발생한 뒤 관련 당사자들이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지켜보면서 느꼈던 점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미디어입니다. 경기가 끝난 뒤 조 토리 메이저리그 부사장을 기자회견장에 세웠습니다. 당시 판정이 정당했는지 여부부터 따지기 시작해 선수 보호를 위한 대책까지 캐물었습니다. “애리조나 가을리그부터 선수들이 2루 베이스를 향해서만 슬라이딩 하도록 했다. 결과를 지켜 본 뒤 규칙 개정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답변이 나오도록 했습니다.
다음 날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어틀리의 슬라이딩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과 기사를 실었습니다. 특히 <시비에스 스포츠>(CBS SPORTS)의 존 헤이먼 기자는 “메이저리그가 선수 보호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어틀리에 대해 출장정지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나름 훌륭한 근거를 가진 확신에 찬 칼럼이었습니다.
다저스, 컵스 감독들의 태도 역시 주목할 만 했습니다. 피해자인 테리 콜린스 메츠 감독은 슬라이딩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지나간 일”이라고 입을 닫았습니다. 3차전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수들이 감정적으로 격앙 돼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야구에, 경기에 집중하겠다”고만 말했습니다.
다저스 매팅리 감독 역시 최대한 말을 아꼈습니다. 슬라이딩의 정당성에 대해 언급을 거부하고 “어틀리가 부상을 입히려고 슬라이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고만 언급했습니다. 매팅리 감독은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 어틀리를 출장시키지 않았습니다. 메츠 선발 투수 맷 하비를 상대로 통산 18타수 6안타(.333) 홈런 1개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끝내 벤치에 앉혀 두었습니다.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된 어틀리는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까지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식으로 사과문을 내고 미디어와 접촉을 사절하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의 제재조치에 대해서는 재심의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이 일에는 에이전트는 물론이고 선수노조도 재심의를 서두르려는 메이저리그에 대해 “자료 준비가 필요하다”며 일정을 늦춰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어틀리의 행위에 대해 적어도 미디어나 메이저리그 선수 누구도 ‘뻔뻔하다’고 비난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14일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도 2루에서 선수를 보호할 수 있도록 규칙 개정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포스트시즌 도중 아주 민감할 수 있는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관련자들의 태도와 평상시 마련해 놓은 절차가 어떻게 감정 낭비를 줄이고 자기들이 살아가는 무대를 보호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모두 눈 앞의 승리(감정적인 것이든, 경기든) 보다는 이런 일로 인해 팬들이 야구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메이저리그라고 하는 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대안을 마련해 가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틀리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징계 결정이 나온 후 모두 말을 아끼고 있던 가운데 클레이튼 커쇼가 다저스 선수들의 속마음을 표시했습니다. “규칙을 바꿔라. 아니면 어틀리를 그냥 놔둬라. 메이저리그의 징계는 어틀리에 대한 집단 괴롭힘 같은 짓이다. 지금까지 누가 이런 일로 징계를 받았나.” 로스앤젤레스 / 박승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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