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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현의 MLB 리포트
메이저리그 개막을 앞둔 3월26일(한국시각)의 일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지역의 한 매체에서 마이애미 말린스 투수인 재리드 코사트가 스포츠 도박에 연루돼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근거는 코사트 명의로 열려 있던 트위터 계정이었습니다. 여기에 코사트가 스포츠 도박을 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네가 선택한 것에 엄청난 돈을 걸었다’고 적은 내용이 폭로됐습니다. 트위터 계정은 보도와 함께 즉시 삭제됐고, 코사트는 “트위터 계정은 해킹됐고, 나는 결코 야구와 관련해 어떤 돈도 걸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즉시 코사트에 대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일주일이 조금 지난 4월4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야구 경기에 돈을 건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에 돈을 걸었기 때문에 벌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습니다. 4월11일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상금이 걸려 있는 야구 판타지게임 참가를 금한다’는 단체협약 개정에 합의했습니다. 그 뒤 다저스타디움 클럽하우스 선수 사물함마다 ‘선수들은 상금이 걸려 있는 야구 판타지게임에 참여할 수 없으니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안내 문서가 놓여 있는 것을 봤습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이미 야구와 관련한 어떤 스포츠 도박에도 돈을 걸 수 없습니다. 스포츠 도박과 판타지게임은 다른 사안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코사트 사건을 계기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조처를 취했습니다. 사건이 외부로 드러나고 강화된 대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보름 남짓에 불과합니다. 올초 도박의혹 보름만에 규제 강화합법적 게임도 돈 걸리면 금지시켜
통산 최다안타 선수도 26년째 제명 팬들 신뢰 잃는건 한순간일텐데
사법 판단 나온뒤 처리할 문제?
KBO·선수협도 뒷짐 진 건 아닌지… 도박과 관련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은 피트 로즈일 것입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개인통산 최다안타 기록(4256안타)을 갖고 있지만 스포츠 도박에 베팅한 사실이 드러나 1989년 8월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추방된 인물이죠. 도박 추문 때문에 야구 명예의 전당 입성도 좌절됐습니다. 지난 1월 롭 맨프레드 신임 커미셔너가 임기를 시작할 무렵 입길에 많이 오른 것은 로즈의 복권이었습니다. 이미 26년 가까이 징계를 받고 있는 만큼 ‘과연 신임 커미셔너가 로즈를 사면복권시킬 것인가’ 하는 게 관심을 모았습니다. 페이 빈센트, 버드 셀리그 등 전임 커미셔너 시절에는 복권의 ‘복’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는 의미도 됩니다. 메이저리그의 이런 태도는 ‘프로야구’라는 산업에 대한 분명한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정당한 대가(돈)를 받고 팬들에게 ‘야구 경기’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프로야구입니다. 만약 여기에 관련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부에 개입하게 되면 고객의 신뢰를 잃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판이 깨지는 것이지요. 메이저리그에서 합법적인 야구 판타지게임까지 돈이 걸려 있는 것이면 금지한 이유일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것도 있지만 불법이 판을 치다 보니 여러 종목의 선수나 지도자까지 연루돼 사법처리를 받는 사례도 생겼습니다.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이들을 한국시리즈 로스터에서 제외한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카지노 출입이 합법인 미국과 한국의 해외 원정 도박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이번 삼성 선수들은 스포츠 도박을 한 것도 아닌 줄 압니다. 하지만 ‘종사자들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메이저리그가 보여주는 태도를 참고할 만합니다. 원정 도박(에스엔에스 문제 포함) 등의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아직 수사중인 사건이어서”라든가 “사법당국의 판단이 나온 뒤에 처리할 문제”라고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물론이고 프로야구선수협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박승현 로스앤젤레스/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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