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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5 20:34 수정 : 2015.11.30 18:55

[매거진 esc] 정준화의 다시보기

아직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대니얼 크레이그가 <007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제임스 본드 배역을 떠날 거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50년 넘게 이어져온 이 시리즈는 스파이 액션 장르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미녀들과 함께 이국적인 풍광을 누비며 세상을 구하는 첩보원은 노골적이다 못해 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남성 판타지다. 그는 끊임없이 뛰고 구르고 싸우는 생사의 여정 중에도 근육질 몸에 꼭 맞게 재단된 톰 포드의 슈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애스턴마틴이든, 호사스러운 명품 옷이든 본드에게는 종이 냅킨 같은 일회용일 뿐이다. 수시로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긴 하지만 세상에 엠아이(MI)6 요원만한 직업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리 파머
과연 영화 속의 모든 스파이는 제임스 본드처럼 근사한 삶을 누리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국제첩보국>(원제: 더 입크리스 파일)의 해리 파머가 대표적인 반증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태생부터가 007의 대안으로 설계된 캐릭터였다. 숀 코너리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하며 특유의 능글맞은 섹시함을 과시하던 1960년대 중반, 007 시리즈의 공동 제작자였던 해리 숄츠먼은 감독 시드니 J. 퓨리와 함께 렌 데이턴의 스릴러 소설을 스크린에 옮겼다.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주인공은 강하고 노련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도입부는 뜻하지 않게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국방부 직원의 일상을 요약해 보여준다. 자명종 소리에 잠이 깬 해리는 서둘러 두꺼운 뿔테 안경을 찾는다. 흐릿하던 시야가 그제야 선명해진다. 커피를 끓이고 신문을 훑은 뒤에는 흰 셔츠에 폭이 좁은 검정 타이를 매고 품이 넉넉한 재킷을 걸친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난 듯 침대 위를 살핀다. 이불 밑에서 권총 하나가 드러난다.

뿔테 안경과 헤링본 무늬 트위드재킷은 모험을 위한 치장보다는 실용적인 출근 차림에 가깝다. 스타일링만 봐도 관객들은 해리 파머가 제임스 본드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임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현장 경험이 부족한 초보 스파이이며 대부분의 식사는 직접 요리를 해서 해결할 만큼 알뜰한 생활인이다. 어쩌면 재킷과 코트 역시 세일 기간에 저렴하게 건진 물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머의 스타일이 본드보다 못한 건 결코 아니다.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 아이템인 트위드재킷은 2015년의 남자들이 입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지금 패션계는 1960~70년대의 공붓벌레를 연상시키는 너드 룩에 한창 열광중이다. 셔츠 사이로 가슴털을 흩날리던 숀 코너리의 기름진 남성미보다는, 젊은 마이클 케인의 다소 고지식해 보이는 지성미가 더 각광받을 만한 시대라는 뜻이다.

정준화 피처 에디터
나는 해리 파머가 살인 면허를 지닌 바람둥이 스파이보다 더 세련된 취향의 소유자일 거라고 확신한다. 과연 본드가 직접 쇼핑을 하기는 할까? 머니페니(비서)가 옷장에 채워준 고급 슈트를 가격표도 확인하지 않은 채 꺼내 입는 건 아닐까? 게으른 마초이즘이 남성적인 매력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자신에게 어떤 차림이 어울리는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에게는 어떤 요리를 해줘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해리 파머는 제임스 본드로부터 영화 역사상 가장 섹시한 스파이의 타이틀을 빼앗아올 자격이 충분하다.

정준화 <더블유 코리아(W Korea)>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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