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정준화의 다시보기
‘홍대병’이라는 신조어가 있는 모양이다. 인디 문화의 상징과 같은 지명을 빌려 와 ‘한국형 힙스터’를 비꼬는 말이다. 이른바 홍대병 환자들은 자신이 대다수와는 다른, 그래서 좀처럼 이해받기 힘든 좁고 특별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티브이엔>(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콩트 앤 더 시티>는 홍대병을 소재로 한 농담을 선보인 적이 있다. ‘자신만 아는’ 밴드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주인공은 우연히 티브이를 봤다가 충격에 빠진다. “아니, <무한도전>에 혁오가 왜 나오는 거지? 뭐야, 당신들 ‘위잉위잉’ 알아요? 그거 나만 아는 노래인데!” 돌이켜 보면 내게도 홍대병을 깊게 앓았던 흑역사가 있다. 199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벤 스틸러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리얼리티 바이츠>는 극장 개봉도 없이 곧장 비디오로 출시됐다. 번역된 제목은 <청춘 스케치>였다. 인생의 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올해의 영화 정도는 되는 작품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밴드 ‘더 낵’의 ‘마이 샤로나’가 수록된 오에스티를 카세트테이프로 몰래 듣곤 했다. 하지만 취향을 나눌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았다. 키아누 리브스의 <스피드>에 열광하던 친구들은 만만치 않은 현실에 더듬더듬 적응해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청춘 스케치>를 ‘숨겨진’ 수작 정도로 여겼던 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무수히 많이 만났다. <스피드>같은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엑스세대의 컬트에 가까운 작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이 ‘마이 샤로나’를 흥얼거릴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뭐야, 당신들 <청춘 스케치>알아요? 그거 나만 아는 영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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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노나 라이더. 사진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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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화 <더블유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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