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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7 18:30 수정 : 2006.06.12 11:00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지는 자는 비참하다!’(Vae victis!) 이 라틴어 속담은 우리 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윤 저하 위기에 빠져 비용절감 경쟁을 벌이는 각국 자본이 잉여가치 수취의 폭을 넓히기 위해 노동자들을 원자화한 개체로 만들려고 총공세를 펴는 상황에서는 ‘밀리면 죽는다’는 것이 철칙처럼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게임 룰’을 한번 받아들이기만 하면 자본은 곧 노동을 고립시켜 박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한편, 끈질긴 진지전을 편다면 이미 확보된 ‘영토’(예컨대 유럽의 경우 1945년 이후에 구축된 복지 시스템)를 지킬 뿐만 아니라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노동계의 전위를 담당했던 2만명의 광산 노동자들을 해고시키고 광업을 다시 구조조정하겠다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에 맞서 1984년 3월 광산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들어갔다. 약 1년 지속된 파업에서 몇몇 노동자들이 죽고 1만1천여명이 검거되는 등 치열하기로 전례가 없었지만, 정부에 포섭당한 다른 산업별 노련들이 연대를 거부한 탓에 광산 노동자들은 패배했다. 그 패배로 광산 지역이 세습적 빈곤의 지대로 변한 것은 물론, 신자유주의에 영국 노동계가 저항할 능력을 당분간 잃기도 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70년대까지 확보해 온 많은 혜택들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무상 교육권을 잃은 영국 대학생들이 내야 하는 연간 약 500만원까지의 등록금이 한국에 비하면 싸지만 추세로 보아 몇 해 뒤 한국만큼이나 대학생들을 수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우파 정권의 복지제도 개악 시도에 맞서 95년 약 200만명의 노동자들이 나선 총파업 투쟁을 비롯하여 계속 크고 작은 충돌을 통해 복지 모델을 지키려고 힘을 쏟은 결과, 2000년부터는 주당 35시간 근무제 시행 등 새로운 성과까지 올렸다. 유럽 최장의 노동 시간에 시달리는 영국에 견주면 행복한 노릇이라 하겠다. ‘목소리를 내는 만큼 복지를 얻게 된다’는 법칙을 믿기에 현재 프랑스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청년노동을 비정규화하는 악법에 맞서 길거리로 나가는 것일 거다.

초과 착취의 대상이 된 비정규직의 조합화 시도들이 곳곳에서 가혹한 탄압을 받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그래도 암흑 속에서 빛이 보인다. 계속되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정규직 사업장에서는 70년대의 전설적인 동일방직 투쟁과 비견될 만한 끈질긴 저항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만들고 이중 착취를 가능케 하는 외주화를, 해고 위협을 무릅쓰고 거의 한 달 가까이 반대하여 싸워온 한국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을 보면, 미래의 대한민국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의 장이 아닌 연대·복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회사가 그들이 개별적으로 투항한다면 ‘시혜’를 베풀어준다고 유혹해도 끝까지 위탁업체 아래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노예 생활을 거부하는 그들은 수백만 명의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러한 현장의 투쟁들이 전국적인 비정규직의 조합화·정규직화 운동으로 확산된다면 자본의 비인간적인 공세가 결국은 역전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일제하 ‘불령선인’들이 지금은 독립투사로 불러지듯이, 지금 투쟁으로 쓰러지고 ‘업무방해’와 같은 죄목으로 옥살이를 하고, 해고·가압류로 생계 곤란자가 되는 비정규직 운동가들이 미래에는 우리를 경쟁의 지옥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게 한 노동계의 영웅으로 불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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