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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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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필자에게 한국학 수업을 들었던 한 일본 학생과 동아시아의 양성 평등화 현황을 두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였던 그 학생에게 최근 한국의 양성 평등 진척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사상 첫 여성 총리, 호주제 폐지 …. 가족 가치를 들먹이며 군국주의 시대의 현모양처론을 슬그머니 다시 꺼내는 수구주의자들이 정계에서 극성을 부리는 일본으로서 한국의 상황이 부럽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이 부럽다니 마음 한구석에서 자긍심을 느꼈다. 그런데 속사정을 따져보면 우리 상황이 그렇게 부러운가? 정치권이 나라 안팎의 시선을 의식해 여성 기용에 마음을 쓴다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지배체제 상부에서 여성의 얼굴이 뜬다고 해서, 과연 그 하부에서 가부장적 가치관이 뒷받침하는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는가? 성차별적 고용구조에 저항하는 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이 여성 총리와 여당의 여성 서울시장 후보자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냉대와 경찰 탄압만을 맞은 것은 상징적이다. 다수 여성을 비정규직으로, 소수 남성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구조도 문제지만, 과연 한국의 고속열차나 비행기에서 대다수 승무원이 꼭 젊은 여성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 항공사를 이용해본 사람이면 알지만, 거기에서는 남녀 승무원의 비율이 각각 절반에 가까운데다 결혼, 출산으로 여승무원이 퇴사하는 경우도 적다. 여성 총리의 얼굴이 ‘선진화한 대한민국’을 과시하는 동시에, 여성 노동자들의 외모와 ‘여성적으로’ 친절한 언행이 남성 손님들을 만족시켜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이 일본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압축성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기존의 여성성 상품화·예속화 패턴이 본질적으로 바뀌기라도 했던가? 몇 해 전에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나선 ‘안티 미스 코리아’ 운동은 필자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를 남성의 눈요깃감, 남성들에 의해 평가되는 상품으로 만드는 ‘미스 코리아’ 부류의 ‘여체 박람회’야말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상징이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완벽한 에스(S)라인으로 관객의 눈길을 잡아야 하는 ‘미스 태극전사 선발대회’가 열리고, ‘섹시한 응원’을 길거리에서 벌이는 여성 연예인들이 여러 매체에 대서특필되고, 반라의 여성 응원팀들의 사진이 신문들을 장식하는 최근의 상황을, 페미니스트의 견지에서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남성답게 힘세고 민첩한 남자가 전사로서 가족과 나라를 지키고 여자답게 아름답고 배려가 많은 여성이 그 전사를 도와주고 챙겨준다는 것이 바로 고금 가부장제의 주된 성역할 모델이라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혈기왕성한 ‘태극전사’들이 운동장에서 대한민국의 명예를 높이고 방년의 미녀들이 그 언저리에서 전사들을 응원해주는 것이 바로 그 패러다임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성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장 눈치챌 수 있다. 그럼에도, 안티 미스 코리아로 성가를 올린 한국의 페미니즘이 마땅히 펼쳐야 할 ‘안티 월드컵’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근 파시즘’을 공격해도 되지만, 남근의 소유자를 ‘나라를 지키는 태극전사, 뭇 미녀의 우상’으로 만드는 국가주의적인 쇼를 공격하기가 곤란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남근 숭배’를 벗어나려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근 권력’ 뒤에 숨어있는 국가와 자본을 직접 공격해야 하지 않는가? 국가, 자본을 떼어놓고 ‘페니스 파시즘’과 가부장제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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