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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6 17:26 수정 : 2006.11.07 13:59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등잔밑이 어둡다고나 할까? 한반도를 두고 학술 정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일 터인데, 요즘 바로 미국과 일본 정치인들이 한반도 문제에서 무지에 바탕을 둔 ‘소망적 사고’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이라크 독립군의 끈질긴 저항과 중-러 블록의 대두, 한국의 대북 화해 정책 등으로 대북 무장 도발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행동을 자제하는 반면에 19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북한 붕괴론’을 다시 재탕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북 제재가 북한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에는 어떤 근거도 없지만, 이 이론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대북 압살 작전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도 매우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은 확실하다.

‘북한 붕괴론’이 이야기될 때 ‘전례’로 언급되는 것은 89∼91년의 동유럽 몰락인데, 이는 논리적 비약이다. 동유럽 나라들 대부분이 소련의 간접적 지배를 받아왔던 만큼 89∼91년 변혁들은 ‘민족 해방’이란 성격을 띠었다. 소련에 종속된 적이 없었던 유고슬라비아 정권의 경우 그때 정책 방향을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로 바꾸어 크로아티아 등의 분리주의 세력과 전쟁에 돌입했을 뿐 2000년까지 교체되지 않았다. 무력에 바탕을 둔 소련 지배 대신 경제력으로 유럽연합의 지배를 받는 지금의 폴란드·헝가리·체코 등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서민경제가 황폐화돼도 89∼90년의 민족 해방의 정통성 만큼은 훼손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북한은 동유럽과 달리 50년대 중반 이후에 실질적으로 소련에서 이미 독립했다. 국가 주도형의 폭압적 근대화를 진행해 온 이북 정권은, 식민지의 암흑기와 6·25 전화 등 외세와의 충돌들을 겪은 피지배 민중들에게 호소력이 강한 ‘민족적’ 명분을 제시하는 한편, 중국이나 베트남, 쿠바, 사담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사무원·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복지혜택이라는 사회적 헤게모니 획득 수단을 쓰기도 했다. 요즘 일부 학자들이 박정희 시대의 이남을 ‘대중 독재’라는 틀을 적용하여 분석하지만, 굳이 한반도에서 ‘대중 독재’를 찾자면 이는 최저임금 제도마저도 만들지 못한 박정희 시대의 이남이라기보다는 노동자·농민들에게 직장 이동이나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빼앗는 등 세계에서 보기 드문 대민 통제를 하면서도 적어도 철밥통을 보장해주었던 김일성 시대의 이북이었을 테다.

물론 90년대 중반의 기근 사태로 적어도 지방에서는 이북의 복지제도 기능이 마비 내지 극도로 축소됐지만, 그렇다고 대중독재의 심적인 기반까지도 무너졌다고 봐야 하는가? 실패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싫어하면서도 침략자 미군을 상대로 계속 저항전을 펼치는 옛 이라크군 병사들을 거울로 삼아 최근의 국제적 상황 속에서 이북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시기를. 사실, 미-일 블록의 압살 정책이 심화될수록 이북의 민중은 준전시 긴장 속에서 계급적인 억압자로서의 자기들 정권의 성격을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대외 대결의 과정에서 형성·단련된 동원 국가로서의 이북은 외부로부터의 불완전한 봉쇄로‘붕괴’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경제 성장의 둔화로 말미암아 민중의 고통이 심화될 것이고, 대중·대남 협력에서 차질이 빚어질수록 외부에 대한 지식의 습득이 어려워질 것이고, 정권의 ‘반외세 투쟁’의 명분이 강화될수록 민중들의 계급적인 자각이 늦어질 것이다. 국내외의 ‘북한 붕괴론자’들은 과연 이런 결과들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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