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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4 18:35 수정 : 2007.01.25 10:52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칼럼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올해 대선에서 여권인 중도 우파가 권력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아직도 거의 1년이 남았기에 중도 우파 집권 10년의 결산을 하기가 이르지만, 거칠게나마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남긴 것이 무엇인지 한번 성찰해 보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그에게는 당면한 세 가지 과제가 있었다. 첫째, 이북 관료집단을 포섭하여 이북 체제의 재앙적인 붕괴를 방지하면서 평화공존의 기반을 짜는 것, 둘째, 지역 차별과 국가보안법, 대체복무가 없는 군대가 상징하는 파시즘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 셋째,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로 신자유주의로 재편되는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한국 기층계층을 보호할 복지망부터 만들어 기업들의 무자비한 이윤 극대화에 맞서 노동자들의 직장 안정 대책을 세우는 것이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민중운동의 일각에서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이 정도는 마땅히 기대해야 했다. 그런데 결과를 조감해 보면 첫 과제는 부분적으로나마 인정된다 하더라도, 둘째 셋째 문제는 개악이 됐을 뿐이다.

사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대북 정책만 제외하고서는 실질적인 정책 결정이 보수적인 관료 집단에 맡겨져 과거의 ‘숭미 노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형제 철폐를 주장하는 유엔의 사무총장이 되어서도 미국이 배후 조종한 후세인의 처형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반기문의 모습을 보면, 한국 관료집단의 성격을 당장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햇볕정책이 지속된 덕분에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평가받을 만한 부분이 있대도, 파시즘 잔재 철폐는 전적으로 실패했다. 송두율과 강정구의 재판에 이어 보수 언론한테 이미 사회적 ‘인민재판’을 당한 이른바 ‘일심회’ 피고인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유엔에서 권고하는데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수감이 계속돼 세계 전체에서 옥고를 치르는 병역 거부자들의 90% 이상을 한국인이 차지한다. 민중 시위 진압이 독재시대 정도의 잔혹성을 보여 노동자·농민들이 경찰 방패에 찍혀 숨지는 경우까지 잇따르는데, 민주화 투쟁 시대와 달리 중간 계층들이 여기에 거의 관심을 안 보였다. 파시즘의 잔재들은, 척결되기는커녕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죽이고자 계속 쓰이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도 우파의 경제·사회 정책은 민중을 울리기만 했다.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에서는 점진적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결과로 비정규직의 비율이 34%에 이르렀지만 한국의 급진적 신자유주의 정책은 임시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이 무려 전체 노동자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낳았다. 비정규직의 구매력과 납세 능력이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된다는 차원에서도, 비정규직화와 사교육비의 증가가 맞물리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세계 꼴찌인 1.1로 떨어져 노동력 재생산조차도 불가능해진 차원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식의 신자유주의는 장기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에도 부정적이다. 그런데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먼 자본가와 그들이 주는 정치자금으로 사는 정객들을 이 사회에서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이번의 실패에서 중도 우파가 한 가지라도 배웠으면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이 시대에, 대자본의 이해관계는 전체 사회의 이익을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반사회적 성격을 띤다. 그러기에 대자본의 마름 노릇을 하다가는 어차피 극우들을 더 선호하는 대자본한테도 진정한 인정을 못받고, 민중에게도 적이 되고 만다. 죽도 밥도 안 되는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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