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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21 17:13 수정 : 2007.02.21 17:13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아홉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수 외국인 보호시설 참사에 대한 언론매체 보도를 보면서 실망감을 느꼈다. 외국인 인권 침해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들렸던 것은 다행이었지만, 주류 언론들은 화재 원인이나 ‘안전 불감증’과 같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핵심을 비켜간 듯했다. 국내에서 열심히 일하는데다 많은 경우에는 가정까지 꾸려 한국을 새로운 고향으로 생각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왜 ‘단속’해서 생명조차도 보장할 수 없는 시설에다 집어넣어야 하는가? ‘단속’ 이외에는 어떤 이민 대책도 없는 것인가?

한국의 인구는 2050년에 이르러 약 1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로 노년층의 비율이 늘고 근로인구가 2016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는데다, 대학 진학률이 80%나 되어 단순 노무직을 구하는 데는 지금도 어려움을 겪는다. 2010년부터 구인난이 전반적으로 심화될 것을 예상하는 정부는 취업연령 앞당기기와 퇴직연령 늦추기, 군 복무 기간 단축 등의 방안을 제시하지만, 그렇게 해서 노동자 부족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뻔하다. 교육열이 높은데다 신분 상승 기대심리가 강한 고학력의 한국 젊은이들이 과연 노무직에 쉽게 진출하겠는가? 그렇다면, 구미에서 해 온 것처럼 국내 노동시장을 제한적으로나마 개방해 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일하다가 차후에 좀더 쉽게 한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그 시작은, 프랑스나 스페인이 몇 차례에 걸쳐 했던 것처럼 기존의 ‘불법’ 이민자에 대한 사면부터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스페인의 경우, 6개월 이상 스페인에서 체류했으며 최소 6개월 동안의 취업 계약을 보유하고 전과가 없는 일체 ‘불법 체류자’들에게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대대적인 이민자 사면을 2005년에 벌여 거의 70만명의 ‘불법 체류자’들의 신분을 양성화했다. 지금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하는 약 19만명의 외국인 노동자 중 대다수가 국내에서 장기적으로 노동하거나 평생 살기를 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그들을 사면하여 차후 귀화 자격이 부여되는 합법 체류자로 만든다면 다민족 공동체 만들기에 기여하고, ‘불법 체류’와 같은 약점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인권 침해를 줄이고, 노동자가 필요한 경제에 도움을 주는 일거삼득의 묘책일 것이다. 이들의 신분이 양성화돼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와서 같이 살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드디어 다양한 종족이 함께 공존하는 21세기 벽두의 정상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일축할 사람이 많겠지만, 중국·인도·파키스탄에서 코리아 타운들이 번성하기를 바란다면,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내의 차이나·인도·파키스탄 타운들도 세워져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핵심적인 부분은,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체류를 3년으로 제한하고 사업장 이동을 금지하는 등 그 발을 묶어 버리는 현행 고용허가제를, 외국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사이의 벽을 허물고 외국 노동자의 궁극적 국내 정주를 가능케 하는 ‘노동허가제’로 단계적으로 대체해 가는 것이다. 이는 인권 보호나 다민족 사회 만들기 차원에서도 핵심적이지만 ‘경제’ 차원에서도 ‘이로움’이 된다. 기술과 한국어를 잘 익힌 사람을,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내보내는 것이 사업자의 처지에서라도 합리적인 일인가?

여수 참사는 ‘단속’ 위주인 이민 정책의 파산을 보여준다. 이 일을 겪고서도 ‘감시와 처벌’ 방식의 이민 억제를 계속할 것인가?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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