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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8 17:42 수정 : 2007.04.18 20:14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몇 년 전에 박정희 시대의 ‘대중독재’에 대한 논쟁이 학계의 관심사가 됐다. 국가주의의 대중적 내면화, 그리고 독재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강조했던 임지현 교수(한양대)의 논거를 놓고 봤을 때는 필자는 생각이 엇갈렸다. 박정희의 우민화 작업이 상당히 성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 이론이 지나치게 적용되는 경우 박정희 지배의 폭압적 본질도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도 무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요즘 국내 상황을 보노라면 ‘대중독재’ 이론이 적용되지 않으면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독재는, 과거의 개발주의 폭압 정권이 아니고 자본의 이윤 극대화 이외에는 어떤 의제도 거부하는 극단적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태, 즉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시장주의적 독재다.

한 사례를 들어볼까? 며칠 전에 금융노조가 은행 창구영업 시간을 한 시간 단축시켜 오후 3시30분까지로 할 것을 제안했다. 노르웨이에서 살면서 3시30분에 문 닫는 은행을 편하게 이용해온 필자로서는, 이 제안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로는 은행권에서 감원이 심한데다 창구영업 이외의 업무가 늘어 8시반 이후의 퇴근이 일상화됐다는 점,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과 상사의 과도한 요구를 못견뎌 과로사한 은행 노동자들도 있었다는 점 등을 인정해야 하지 않은가? 무인기계와 인터넷뱅킹이 발달된 이 시대에 과연 은행노동자를 장시간 창구업무에 종사시킬 필요가 있는가라는 점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런데 이 제안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보수언론들이 ‘배부른 노조’를 저주한 데 이어 90%를 넘는 대중이 은행 업무 시간 단축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제발 업무 스트레스를 좀 줄이게 해달라는 은행 노동자들의 호소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90%의 응답자들 중에서는, 분명히 스스로도 심한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도, 머잖아 과로사로 요절할 이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실질적인 계급적 이익을 각성하지 못한 채 자본 독재에 대중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자본과 국가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는 교육과 매체를 통한 시장주의적 환상의 주입을 주된 요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강성노조가 국민 경제 좀먹는다’는 식의 기사 제목들을 늘 보는 대중들에게는 업무시간 단축으로 금융상품을 약간 덜 팔게 될지도 모를 은행자본의 사정은, 주주들의 배당금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의 사정보다 더 가까이 와닿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형편이 주주보다 노동자에 더 가까운 수많은 대중들의 자본 독재 지지를, 단순히 ‘세뇌의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보호, 일본 자본과의 제휴에 힘입어 이제는 아시아의 ‘아류 제국’으로 성장해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거의 200만명 넘는 노동자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한국 자본의 ‘기적적인’ 개발 신화가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가려 한국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부추기기도 한다. 세계 자본 전체가 새로운 대공황의 구렁이에 빠져야 이 환상의 허구성을 알게 될 것이다.

어쨌든 국가와 자본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상당부분도 ‘우향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이다. 노동계급이 제대로 조직화되지도 급진화되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지금과 같은 ‘일 중독 사회’를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진정으로 행복한, 여유와 흥미가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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