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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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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1990년대까지 유럽과 한국 사이에는 정치·사회적 담론에서 커다란 차이가 존재했다. 유럽에서는 ‘민족’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던 파시즘의 광란과 50~70년대 제3세계로부터의 대량 노동이민 이후로는 ‘민족’이라는 말은 진보적 의미를 상실했다. 외국계 인구가 영국 런던처럼 전체 인구의 25%가 되거나 독일 함부르크처럼 15%가 되어 특히 아시아계 민중이 진보적 투쟁들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영국 민족’이나 ‘독일 민족’을 들먹이는 것은 자연히 극우의 언설이 된다. 물론 한국에서도 화교나 혼혈인 등 종족적 소수자들이 늘 존재했지만, 90년대까지 ‘민족’의 화두에 몰두해 온 진보운동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진다. 정부는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야만적인 단속, 추방 정책 등으로 노동이민을 억제하지만, 결혼이민은 급증하고 있다. 결혼이민자가 7만5천명을 넘고, 다문화 결혼 비율이 14%를 초과하고,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성 중에서 약 35%가 외국인 배우자를 맞이하는 시대가 됐다. 만약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20년 뒤엔 이민 2세가 거의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53% 가량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이민자 가정은 ‘민중 중의 민중’, 가난과 차별로 이중고를 겪는 이들이다. 그들에게야말로 진보운동이 우선적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들에 대한 정부 정책은 미흡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이다. 말로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간다’고 하지만 모자라는 예산을 주로 결혼이민자의 ‘동화 사업’에 쓴다. ‘다문화 사회 건설을 위한 우리 노력’을 과시하려는 각급 단체·기관들은 외국인 여성을 위한 한글교실을 연다는 소식을 경쟁적으로 매체에 올린다. 거기에다 외국인 여성에게 한복을 입혀 ‘윗분’에게 절을 올리게 하는 등 ‘우리 전통문화 교육’을 시켜 ‘모범적인 한국 며느리로 만들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평생을 보낼 사람이면 한국어를 잘 구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한글교육은 사실 아직까지 체계화되지도 않고 태부족하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민족’이 의미를 잃어가는 시대에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타자들을 이 땅에 산다고 무조건 ‘한국화’시킬 필요가 있는가? 성리학이 기승을 부렸던 조선에 비해 전통적으로 여성의 위치가 더 높았던 베트남이나 필리핀 여성들에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젖은 구시대 관습들을 ‘전통예절’이니 ‘전통문화’니 거창한 이름을 붙여 가르친다는 것은 과연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시대에 적합한 일인가? 외국인 여성과 그 자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계속 보존하는 것도 그들의 인권 중 하나다. 이민 2세들은 한국 시민이지만 자신의 선택에 따라 문화·언어적으로 베트남인이나 필리핀인으로 남을 권리도 있다. 우리가 정말로 다양성의 사회로 가자면, 북유럽 나라들에서 하는 것처럼 이민 2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학교에서 그들을 위한 모국어반을 특설해 적어도 일부 과목을 그들의 모국어로 가르치는 등 그들의 문화·언어적 독자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100년 전에 받아들여진 ‘민족’ 개념의 유효기간은 이미 지났다. 미래의 한국은 ‘한민족’의 독점적 영역이 아니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들의 만남과 섞임의 공간이 될 것이다. ‘무지개 사회’로 원활하게 이동하려면, 우리 속의 타자들을 동화시키려는 생각을 버리는 동시에 그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면서 고유한 독자성을 보존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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