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11.05 18:06 수정 : 2008.09.16 14:42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필자가 소련 말기에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는 매년 수번씩 국제공항으로 가는 일이었다. 가족 재결합 명분으로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민 가는 친척·친지들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헤어지는 마당이라 서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비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은 소련과 대치 중이었는데 그쪽과의 서신왕래나 국제통화 등에 문제가 없었기에 영원한 이별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가족 재결합 건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소련의 망국까지 이렇게 해서 떠난 유대계 소련인만 해도 20만명에 이르렀다. 물론 이스라엘과 미국 쪽에서 없는 친척의 명의로 초청장을 만드는 등의 편법으로 필요한 학자들을 빼가는 의도도 있었고 소련도 이에 국가기밀 보유자 출국 불허 방침으로 맞서는 등 불협화음이 들렸지만, 원칙적으로 소련 정부도 가족 재결합이라는 명분이 있을 때는 자국 국민의 영구 출국을 막지 않았다. 또한 서방에 나간 이들이 소련의 망국 이후에 고향 친척·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새 체제 적응을 돕는 등 소련 시절의 가족 재결합 허용은 결국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산가족 재결합 건으로 1963년 이후에 약 25만명의 동독인들을 받아들인 서독의 경우에도 이 정책이 이후에 통독의 초석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국가 간의 대치는 흔한 현상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서신왕래와 상호 방문, 나아가서는 헤어진 가족들의 재결합이 실현되지 않는 뜻밖의 장소가 있다. 바로 한반도다. 우리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 염원’을 수없이 이야기하지만 분단의 아픔을 가장 크게 안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상처를 위로해주고 통일지향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남한에 살고 있는 60살 이상 고령의 ‘분단 제1세대’는 약 69만명으로 추산된다. 1988년 이후 그들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이들은 12만5098명에 이르지만, 상봉이 이루어진 경우는 8695명뿐이다. 이대로 간다면 25%가 80살 이상의 연세인 다수의 분단 희생자들은 가족을 보지 못한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며칠밖에 안 되는 떠들썩한 보여주기식 상봉 대신, 정기적인 상호 왕래와 가족 재결합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는가?

이산가족 재결합 문제는 1974년 이후 남북 간 협상 내용에 포함됐지만 별 진척이 없는 것으로 봐서 양쪽 정부가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남쪽의 당국자들은 보통 북쪽의 경직성을 탓하는데, 자국민의 미국과 이스라엘 이민을 별로 반기지 않았던 소련을 생각해 보면 북쪽의 태도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그렇다 해도 북한 정부가 앞으로도 과연 고집만 부리겠는가? 경제적 현실을 고려한다면 재결합의 경우 절대다수는 남쪽에서 살기를 원하겠지만, 만약 우선적 재결합의 대상으로 80살 이상의 고령자부터 지정한다면 노동 능력이 없는 그들의 영구 출국이 이북 경제에 피해를 입힐 일도 없을 것이다. ‘대가성’을 내세울 필요야 없지만 북쪽이 가족 재결합을 허용할 경우 남한의 시민사회가 나서고 각종 사회간접시설 투자를 하는 등 남북한의 협력이 새롭게 도약할 것도 제시할 수 있는 장점들이다.

가족의 재결합은 결코 국가의 ‘시혜’가 아니다. 인간이 주장할 수 있는 기초적인 인권 중의 하나다. 분단으로 말미암아 평생 동안 크나큰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희생자들이 더 늦기 전에 자신의 권리를 실현시킬 것을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노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