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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7 19:40 수정 : 2008.09.16 14:52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필자가 오늘의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노라면 ‘공포’나 ‘불안’ 같은 단어들이 연상된다. 체벌과 두발 제한 등 군대 모습을 닮은 학교에서 86.4%의 고교생들이 성적과 입시 불안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23.8%나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인가 하면, 대학에 들어간 이들 중에는 날로 비싸지는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74.7%가 대출을 받아 빚쟁이가 되고, 그 중 82.3% 정도가 심한 불안감에 시달려 불면증·소화불량·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돈 먹는 하마”가 된 대학의 모든 젊은이들은 취업 불안에 떠는가 하면, 운 좋게 취업에 성공한 이들도 마음을 놓지는 못한다. 88.2%가 주거 마련에 불안을 느끼고, 81.5%가 노후를 불안해하고, 77.7%가 자녀 교육비, 즉 사교육비 마련에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직장을 잃는 데 대한 불안감, 큰 수술이나 고질병 치료에 따르는 엄청난 의료비용에 대한 공포, 그리고 최근에 거의 모두 느끼는 어린이 유괴나 ‘묻지마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에 대한 불안 등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10을 최대 행복, 0을 최소 행복으로 할 때에) 왜 5.8에 불과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보다 속된말로 ‘못사는’ 베트남(6.1)이나 베네수엘라(6.8)보다도 못한 수치다. 숭례문에 불을 지르거나 무고한 여고생을 끔찍하게 살해한 범인들이 범행 동기로 “세상에 대한 복수”, “세상이 더러워서” 등을 말하곤 한다. 물론 시민들의 절대다수는 이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간혹 비슷한 정서를 느끼는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재벌을 “성공한 도둑”으로 보고 “도둑만이 잘될 수 있는 더러운 세상”에서 ‘나’도 살아남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가 보편화된 곳에서 어떻게 개인의 행복감이 흘러넘칠 수 있겠는가?

원망·불안·공포·답답함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심리적 특징들이다. 그 기본적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를 이만큼 먹고살게 해줬다”고 여겨지는 박정희식 수출 주도형, 관료와 재벌 중심 모델의 유효기간이 다 돼 이제는 그 모델을 가지고서는 사회가 발전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하도급 위계 체제에서 재벌이 수출을 아무리 늘려도 하청업체들의 ‘질 낮은’ 고용만 느는 것이다. 한때 관료들의 지배를 받았던 삼성과 같은 재벌들은 이제 관료집단을 하수인 다루듯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재벌을 닮아가는 대학들은 학생들을 등쳐먹는 악덕 업체처럼 행동하고, ‘명문대’만 바라보는 각급 학교들은 점차 큰 입시학원으로 변신해 간다. 세계적으로 시장이 포화되고 이윤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관료, 재벌의 ‘개발 연합’이 이제는 ‘기득권 옹호, 사익추구 연합’이 되어 피지배층에 대한 기만과 과도 착취에 혈안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교육, 의료계의 업자들에게 무제한적인 수탈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아 박정희 체제의 말기적 폐단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니 온나라가 불안과 불신에 휩싸여 있는 것이 어찌 당연한 일이 아닌가?

대한민국 주민들을 불안의 지옥에 떨어뜨리고 있는 구제불능 체제의 수명을 연장시키려고 악을 쓰는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 파탄의 순간을 가까워지게 하고 있다. 그들이 키우고 있는 불안의 물결이 결국, 거대한 분노의 파도로 탈바꿈돼 자신들을 덮쳐버릴 수 있음을 어찌 모르는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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