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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3 20:59 수정 : 2008.12.03 20:59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경제 대통령” 이명박이 집권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경제는 벌써 파탄이 다가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근로자 가구의 실질소득은 거의 늘지 않고 있고, 소비재 지출은 소폭 감소하고 있어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계 위협을 느끼고 있다. 약 30%의 가구들이 소득보다 지출이 더 많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적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고속성장을 하는 것은 국민총생산의 66%에 이르는 가계 빚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가 된 자살률이다. 한때 ‘경제기적’을 이루게 한 수출도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 예측에 의하면 내년 수출량이 2.7%나 감소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세계적 위기를 탓하지만, 이런 유의 위기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경제 구조를 고치려 하지 않는 정부부터 문책의 대상이 돼야 한다.

박정희가 수출의존적 경제 모델을 택한 1963∼1964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에 세계무역이 팽창하고 있었기에 그 추세에 편승만 잘하면 경제를 압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박정희의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박정희로 하여금 이런 결정을 하게끔 만든 대외 조건들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에도 수출의존적 모델을 끝내 버리지 않겠다는 정부의 근시안이다. 수출 대기업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당국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제부터 무역은 성장엔진 구실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연간 9∼12% 성장률을 보였던 세계무역은 내년에 잘해 봐야 3% 정도만 늘 것이고 그 뒤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3년간 세계무역량이 70%나 줄어든 대공황 시대의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해도, 보호주의가 곧 강하게 대두할 것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귀중히 여길 것은 수출능력이 아니고 국내시장의 소비능력인데, 이 소비능력을 증강시킬 방법은 아주 강력한 재분배 정책일 것이다. 그 정책을 지금부터 쓰지 않고서는 부동산 가격 급락과 수출·신규고용·실질소득·소비 감소 속에서 몇 년 뒤에 다가올 파탄을 막기가 힘들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상위 20%의 소득이 24%나 늘어났어도 하위 20%의 실질소득은 겨우 2%만 늘어났다. ‘희대의 양극화’가 대한민국의 주된 특색이 된 것이다. 따라서 재분배는 일차적으로 취약한 계층, 즉 천문학적 교육비에 허덕이는 젊은이와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을 겨냥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경기부양 예산의 상당부분을 불요불급 시설물 공사가 아닌 고등교육에 투입하여 등록금의 단계적 인하 효과를 내야 한다. 그래야 재학생과 학부모들의 소비능력을 늘려 국내시장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임금을 부르는 다수 근로자들의 비정규직 신분이 정규직으로 ‘면천’(免賤)되지 않는 이상 과연 그들이 소비를 할 만한 여유를 갖겠는가? 즉,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야말로 오늘날 구국 투쟁의 최전선이다.

물론 ‘수출’과 ‘부동산’으로만 움직이는 이 정권이 효율적인 위기 방지책을 쓸 가능성이 낮다. 1992∼1995년에 버블경제의 위기를 부동산시장 부양책으로 극복해 보려다가 실패를 거둔 일본 정부의 전철을 밟을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나라를 망국에 가까운 상황으로 이끌고 가는 저들의 불명예스러운 퇴진에 대비해 이 나라의 진보세력들이 재분배, 복지주의 경제의 상세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결정적 순간에 국민의 신뢰를 얻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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