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1 19:05
수정 : 2009.01.2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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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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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늘 좌우로 갈라져 있는 노르웨이 여론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로 드물게 거의 통일됐다. 아랍인들을 차별하려 하는 극우를 제외하면 노르웨이가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하는 데 ‘하나’가 된 것이다. 우파 일간지마저도 그 허울 좋은 양비론을 벗어나 아랍인들의 무장 저항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렇게 만든 것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만행에 대한 충격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특히 신세대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근본 틀 자체를 이질시하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징집 연령 남성의 10∼20%가 주로 국가 폭력에 대한 혐오라는 세계관적 이유로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노르웨이에서 보면, 종교가 아닌 정치적 의견, 곧 서안지구와 가자에 대한 작전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을 가차 없이 감옥에 보내는 이스라엘은, 유럽 군사주의 절정기인 1910∼40년대의 국가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의 변명은 “우리 존재에 대한 위협 때문”이지만, 밖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오히려 그 ‘위협’을 열심히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에 유리했던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그것도 모자라 불법 정착촌을 늘리고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의 귀환 내지 보상 문제에 침묵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각종 도발을 해온 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아니었던가?
이스라엘 지배층이 평화가 아닌 긴장의 지속을 원하는 이유들은 여럿이다. 긴장 속에서 중동지역의 미국 첨병으로 군림하여 연간 50억∼6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원조를 받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최근에 극심해진 격차들에 불만이 높아져 가는 이스라엘 국민 집단을 통제하기가 쉽다. 군에서 거의 모든 남성은 3년, 여성은 2년씩 보내고, 43∼45살 되기 전까지 1년에 약 1개월 동안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하는 점은, 이스라엘 인구의 다수가 일상적으로 군사 규율의 적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체 국민을 군사 자원으로 파악하고 국가 운영을 총동원 체제로 하는 제1, 2차 세계대전 시절의 병영국가는, 이스라엘에서 그대로 화석화돼 버린 것이다. 배타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 군국이야말로 세계인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보일 뿐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달리 대한민국이 남의 땅을 점령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다시피 하여 지속하는 군사적 대결 속에서 세계관적, 정치적 ‘이단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의 분위기를 조작하는 이번 정권의 행각은 꼭 이스라엘 지배층을 떠올리게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막대한 노력과 비용을 들여 추진해 온 햇볕정책의 대부분을 사실상 거의 포기하여 북-미 관계의 발전을 목전에 두면서도 남북관계를 악화 일로로 이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극우들이 ‘자유민주주의적 신념’을 들먹이지만 ‘미네르바’에 대한 ‘입막기 작전’만 놓고 봐도 지금 국내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당장에 알 만하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대중적 불만의 수준을 인식하여 어용적 ‘국민통합’을 도모하고자 대외적·군사적 대결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한다는 혐의를 떨쳐 버리기 어렵다. 사실, 그나마 종교적 병역거부라도 인정하는 이스라엘과 비교해도, 종교적 거부자마저도 감옥에 보내는 대한민국은 화석화된 병영 사회의 전형으로 보일 뿐이다. 북한 인권의 개선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남한 사회부터 먼저 군사주의의 구각을 벗어나 ‘다름’을 충분히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의 본보기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정부 정책은,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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