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8 20:05
수정 : 2009.02.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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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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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지난해에 한 ‘명문대’에서 재미있는 사태가 일어났다. 한 진보단체가 마르크스주의 학술행사를 그 대학에서 열려고 하자 대학 당국이 불허 방침을 밝혔다. 불허의 진정한 이유는 주최 단체에 대한 반감이었겠지만 한 당국자의 설명은 “시대착오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유통기한”이 지났으니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는 논리였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한다는 것은, 1991년부터 최근까지 국내외 ‘주류’의 지론이었다. 일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경전을 “무오류”라고 맹신하듯이, ‘주류’ 시장주의자들이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위주의 선진 경제에 더 이상 위기가 없을 것을 맹신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대신에 그들이 신줏단지처럼 받들어온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이론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차례다. <자본론>에서 분석된 과잉생산의 위기가 공황이라는 형태를 띤 채 오늘날 지구를 덮었다. 지금으로서는 마르크스의 공황론이야말로 가장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다.
공황이란 시장 포화와 이윤율 저하의 누적된 효과에 따른 기업 매상의 급격한 하락과 이에 따르는 감원과 감봉, 그리고 대량 실업 사태에 의한 추가적 소비시장의 위축 등의 악순환을 의미한다. 수출로 울고 웃는 대한민국에서는 공황의 발단은 수출의 급감인데 지난해 12월에 17.9%로 떨어지고 또 금년 1월에 33.8%로 떨어진 수출 실적을 보니 본격적 공황은 이미 시작됐다. 공장 가동률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떨어진 이 나라에서 이제 기업들의 줄도산과 실업 대란, 신용불량자들의 대대적 속출과 소비시장의 급격한 위축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잘 알려져 있다. 대기업에서는 일체 해고를 금지시키고 망한 기업에서 쏟아져 나오는 실직자와 신규 구직자를 공공 부문에 취직시켜주는 등 실업대란부터 방지하는 것이다. 대량 실업만 없으면 소비시장의 위축을 막아 경제 인구 3분의 1을 넘는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자살부터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하려는 것처럼 “건설 경기 부양”을 통해 공사장 비정규직을 양산한다고 해서 실업 대란의 방지는 가능할 것인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안겨주는 불안의 고통을 제쳐두고도, 대졸이 80% 가까이 되는 20대들을 ‘노가다’에 보낸다는 것은 사회적 낭비일 뿐이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자면 국가는 복지서비스나 교육과 같은 영역들에 과감히 진출해 거기에다 공공부문 정규직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처럼 독거노인마다 무료 재택 봉사 도우미를 붙여 고령화 문제 해결에 보태거나, 동네마다 ‘문화와 음악의 공공 학교’를 만들어 아동들에게 연극이나 음악을 무료로 지도해줄 대졸 출신을 모집해도 좋고, 공공 보육시설을 대대적으로 늘려 전체 보육시설에서의 그 비율을 현 5%에서 일본의 수준인 58%까지 올려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풀어야 할 돈을 ‘삽질’이 아닌 공공 부문 정규 고용 확대와 교육 공공성의 강화, 복지서비스의 다양화에 쓰는 것이다. 그래야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젊은이의 절반 정도가 이민이나 꿈꾸는 무한경쟁의 지옥이다. 공황을 기회 삼아 대한민국을 복지사회로 재디자인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의 미래란 중남미와 같은 극단적 격차와 빈곤, 범죄 사회일 것이다. 끝내 수출과 ‘삽질’ 주도의 경제 모델에 대한 맹신을 버리지 못하는 이 정부는 과연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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